서울시가 다음달 실시계획 인가를 낼 예정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SH공사와 토지주·거주민과의 보상 협의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구룡마을 너머로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한경DB
서울시가 다음달 실시계획 인가를 낼 예정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SH공사와 토지주·거주민과의 보상 협의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구룡마을 너머로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한경DB
서울 강남권의 최대 규모 판자촌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이 본궤도에 오른다. 서울시는 다음달 사업실시계획 인가를 내고 보상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보상 작업이 마무리되면 택지조성을 시작해 내년 27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립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만 토지주, 거주민과의 보상 협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구룡마을 개발 계획 다음달 인가

강남 최대 판자촌 구룡마을 개발 '본궤도'
9일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는 지난달 31일 ‘개포 도시개발사업 구역지정·개발계획 변경 및 실시계획 인가’ 신청서를 시에 제출했다. 시 관계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보완 신청서에 대해 강남구청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시에 제출했다”며 “시에서 관련 부서 및 기관 협의를 거친 뒤 실시계획 인가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협의 절차에 한 달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달 인가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포동 567의 1 일대에 있는 구룡마을은 26만6304㎡ 규모다. 시는 이곳에 2692가구(임대 1107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시행은 SH공사가 맡았다. SH공사는 오는 5월 보상계획 공고를 내는 데 이어 6~7월 감정평가 시행(보상금액 산정)을 계획하고 있다. 아파트 공사는 2020년 10월 시작할 예정이다. 보상을 위해 작년 5월 행정안전부로부터 6000억원 규모의 공사채 발행을 승인받았다.

보상협의 ‘험로’ 예상

서울시와 SH공사 등이 물건·토지조사를 한 결과 구룡마을 토지 소유자는 580명, 거주민은 1107가구다. 시는 공공이 주도하는 100% 수용·사용방식으로 구룡마을을 개발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주 및 재정착 방안을 두고 거주민 등이 반발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거주민들은 분양주택 특별공급이나 분양전환 임대아파트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와 SH공사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이주대책 대상자가 아니다. 다만 동법 시행령 부칙에서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1989년 1월24일 이전 지어진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이주대책 대상자로 본다. 구룡마을 주민 가운데 이주대책 대상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이강일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대표는 “서울시가 실시계획 인가를 강행하겠다는 건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겠다는 얘기”라며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만큼 강도 높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토지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수용 방식의 공영개발이 추진되면 시세 수준으로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거주민의 재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공급할 방침”이라며 “임대료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방식 변경 검토를”

일각에선 공영개발 방식이 아니라 부지를 개발한 뒤 토지주에게 땅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환지 혼용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초 서울시도 이 방안을 추진했다가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의 반대에 부딪혀 현행 공영개발 방식으로 선회했다. 이후 SH공사, 토지주, 거주세입자 등의 이해관계가 극심하게 얽히면서 구룡마을 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인 ‘공공지원 민간임대’ 방식도 대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통해 사업성을 개선하면 세입자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서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행 공영개발 방식으로는 거주민 주거 안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라며 “지금이라도 서울시가 여러 이해관계자의 요구사항을 조율할 수 있도록 개발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구룡마을은 1970~1980년대 개포동 일대 개발로 집을 잃은 철거민 등이 집단촌락을 형성한 곳이다. 30여 년간 사실상 방치해오다 2011년 서울시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최진석/이정선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