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신길동에서 분양한 보라매SK뷰. 1순위 청약 부적격자가 대거 당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공급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경DB
지난해 서울 신길동에서 분양한 보라매SK뷰. 1순위 청약 부적격자가 대거 당첨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공급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경DB
서울 흑석동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우편물을 받았다. 1년5개월 전 청약에 당첨돼 분양받은 아파트의 계약이 해지됐다는 통지문이었다. 이 아파트 재개발조합은 “부적격한 자격이었던 점을 뒤늦게 발견했다”며 “공급계약을 즉시 취소하고 계약금을 몰취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A씨는 4억원 이상 프리미엄이 붙은 새 아파트를 눈앞에서 날리게 됐다. 계약금 수천만원도 잃을 처지다.

뒤늦게 ‘당첨 취소’ 통보 줄이어

18일 주택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재개발·재건축단지 일반분양 청약에 당첨됐다 취소당하는 사례가 이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영등포구 강남구 양천구 등 정비사업이 활발한 지역에서 당첨 취소 사례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영등포구는 신길뉴타운에서만 5명의 부적격 당첨자가 나왔다. 신길뉴타운5구역(보라매SK뷰)과 12구역(신길센트럴자이)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서 공문이 내려와 주택법 위반 당첨 사례를 조사하던 중 청약 1순위 자격을 충족하지 못한 당첨자를 새로 발견했다”며 “각 조합에 부적격 당첨자와 맺은 공급계약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정비조합, 1순위 자격요건 바뀐 것도 모르고…부적격자 대거 당첨시켰다 뒤늦게 취소 '파문'
각 구청에 따르면 이번에 일반분양 당첨이 취소된 이들은 모두 ‘1순위 청약 5년 제한’ 요건에 걸렸다.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조합원으로 이미 분양신청을 마친 이들이 5년 안에 다른 정비사업 일반분양 1순위로 당첨됐다는 의미다.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조합원 분양신청도 당첨으로 간주돼 5년 내 1순위 청약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당첨자 선정 단계에서 1순위 자격 여부를 검증해야 하는 건설회사, 조합 모두 부적격 여부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 뒤늦게 당첨 취소가 속출하는 이유다. 한 조합 관계자는 “구청 공문을 받고 당첨자 명단을 대조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1순위 청약 5년 제한은 2016년 ‘11·3 부동산 대책’ 때 도입됐다. 이 제도 시행 이후 조정대상지역에서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낸 단지에 1순위 청약 5년 제한 규정을 적용한다. 전수조사를 새로 하고 있는 만큼 부적격 당첨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계약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

계약이 취소된 당첨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지난해 6월 보라매SK뷰에 당첨된 B씨는 “1년 반 만에 일방적으로 해지를 통보해와 황당하다”며 “서류를 위조하거나 불법 전매를 한 것도 아닌데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B씨는 2015년 서울 모 구역에서 조합원 분양을 받았다. 조정지역에선 2020년까지 1순위 청약이 불가능하지만 B씨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난해 보라매SK뷰에 청약했다. 금융결제원 청약 홈페이지인 아파트투유에서도 별다른 제한 요건이 없다고 나왔다. 당첨 후 계약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입주를 1년여 앞두고 집들이 계획을 세우는 중에 계약이 해지되면서 날벼락을 맞았다.

한술 더 떠 조합은 계약금까지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 아파트 전용 84㎡를 분양받은 그는 계약금으로 6700만원을 냈다. 분양가의 10%다. 그의 손실은 계약금뿐만이 아니다. 중도금 대출 이자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무형의 금전적 손실은 더 크다. 청약통장은 이미 써버렸고 4억원가량의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조합은 강경하다. 부적격 당첨으로 인한 계약 해지이기 때문에 계약금은 모두 조합에 귀속된다는 입장이다. 신길5구역조합 관계자는 “불법 거래로 인한 계약 해지자도 상당해 현재로선 구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계약 해지가 번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첨자와 사업주체 모두 부적격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관계 법령에 근거가 있어서다. 계약 해지자들이 계약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기형 법무법인 명성 대표변호사는 “계약금 몰수는 법령이 아니라 공급계약서상 위약금 조항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면 감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도 “계약 위반에 당첨자의 귀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액이냐 일부냐의 문제이지 계약금은 상당 부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