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노원구 하계동·중계동 아파트 단지들. 대부분의 집값 급등 지역에서 외지인 거래량이 늘어났는데, 이 중 상당수는 갭투자자로 추정된다.  /한경DB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노원구 하계동·중계동 아파트 단지들. 대부분의 집값 급등 지역에서 외지인 거래량이 늘어났는데, 이 중 상당수는 갭투자자로 추정된다. /한경DB
집값 급등 지역에선 예외 없이 외지인 거래량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상당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갭투자를 하는 이들로 추정된다. 갭투자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갭투자자는 해당 지역에 살지 않으면서 투자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는 사람이다.

◆2006년 서울 외지인 매매 역대 최다

집값 급등 지역마다 '외지인 갭투자자' 몰렸다
4일 한국감정원이 거래량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 외지인 거래량을 조사한 결과 갭투자자는 10여 년간 ‘메뚜기떼’처럼 전국을 휩쓸며 집값 상승 지역의 아파트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집값이 급등했던 2006년에는 갭투자자가 주로 서울 부동산을 사들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13.8% 급등했다. 서울은 같은 기간 24.1%나 뛰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 신축 중대형단지 등에 투자 수요가 몰리며 집값이 급등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서울 아파트를 사는 외지인도 크게 늘었다. 2006년 11월 외지인이 매입한 서울 아파트는 4873가구에 달했다. 서울의 12년간 월평균 외지인 거래량(1273건)의 4배가량에 이르는 수치다. 1년간 서울 아파트 거래 5분의 1이 외지인에 의해 이뤄졌다.

갭투자 열기는 2년 뒤 부산으로 옮겨붙었다. 2008년 4월 외지인이 매입한 부산 아파트는 1188가구였다. 관련 통계가 나온 뒤 처음으로 1000가구를 넘겼다. 부산의 12년간 월평균 외지인 거래량(530건)의 2배에 달했다. 전년 대비 아파트값이 16.6%나 급등했던 2010년엔 외지인 거래가 9031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2006년(4698건)과 비교하면 2배가량으로 늘었다.

집값 급등 지역마다 '외지인 갭투자자' 몰렸다
이후 갭투자자는 대구와 울산, 대전에 모여들었다. 2011년 대구와 울산 아파트값은 전년 대비 각각 14.9%, 17.6% 급등했다. 그러자 대구 아파트의 외지인 거래도 같은해 1만1267건까지 치솟았다. 통계 집계 후 최다였다. 2012년 8월 울산 아파트 외지인 거래 역시 평균(213건)의 6배가량인 1250건 이뤄졌다. 2011년 한 해 아파트값이 19.1% 급등한 대전에서도 외지인 거래가 5320건 이뤄지며 전년 대비 9.6% 늘었다.

지방을 휩쓸던 갭투자자는 2013년 중순부터 다시 서울로 향했다. 지방 부동산값 상승이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수도권 집값이 바닥이던 2012년 외지인이 매입한 서울 아파트는 7287가구였으나 2014년 1만4657가구, 2015년 2만3742가구로 급증했다. 외지인 거래가 급증한 2014년은 공교롭게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 반전한 해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보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갭투자자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며 “갭투자자가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적은 곳을 찾아 전국을 순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갭투자, 리스크도 커”

올해도 집값이 급등한 서울에서 갭투자가 활발했다. 올 8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의 20%가 외지인 거래였다. 자금조달계획서를 보면 갭투자 비율은 더 증가한다. 김상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 투기과열지구에서 이뤄진 거래 중 ‘갭투자(보증금 승계 후 임대)’ 비율은 지난해 10월 21.2%에서 올 9월 56.1%로 늘었다. 올 들어 전용 84㎡ 호가가 10억원까지 치솟은 대구에선 6월 외지인 거래가 1279건에 달해 같은 기간 서울(883건)보다 많았다.

전문가들은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가 제때 팔지 못해 물린 투자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탐욕에 취해 매도 타이밍을 놓치는 이들이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하면 투자자는 하우스푸어 수준을 넘어 파산할 수도 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방도가 없어서다. 지난 3월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 사는 A씨는 자신이 구매한 아파트 48가구 전부가 경매로 넘어갔다. 공급 과잉에 전셋값이 떨어지면서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갭투자의 최대 리스크는 전셋값 하락”이라며 “스타 강사의 말만 믿고 ‘묻지마 투자’를 했다간 한순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