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 현대1·2차 아파트. 한경DB
서울 압구정동 현대1·2차 아파트. 한경DB
서울 아파트값이 잇따라 최고가를 경신하는 가운데 최근 이뤄진 고가 거래에서 매수인이 주택담보대출을 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수십억원대 집을 은행 대출 없이 현금만으로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초고소득층이 매입하는 랜드마크 아파트값은 대출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수십억 아파트 현금으로 매입

2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전용면적 107㎡는 지난 8월 말 38억원에 손바뀜해 최고가를 썼다. 3.3㎡(평)당 1억2000만원 꼴이다. 매수인이 담보대출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현금으로만 거래한 게 특징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매수인은 지난달 잔금을 내고 소유권이전을 완료했다. 5억원 안팎의 전세보증금을 끼더라도 30억원이 넘는 현금을 한 달 만에 완납한 셈이다. D공인 관계자는 “제3종일반주거지에 들어선 저층 단지인 데다 대지 지분이 커서 재건축 수익률이 높은 만큼 투자 1순위로 각광받는 단지”라며 “전용 107㎡ 소유자는 재건축 후 새 아파트 전용 59㎡와 84㎡를 ‘1+1’으로 받고 추가로 5000만원가량을 현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통 부촌인 압구정동에서도 고가 현금거래가 나왔다. 한강변 ‘현대1차’ 전용 196㎡ 고층 물건이 지난 8월 43억원에 거래됐다. 이 주택형 역대 최고가다. 신만호 중앙공인 대표는 “매수인은 전세보증금 12억원을 끼고 대출 없이 현금으로 31억원을 지불했다”며 “중형 면적대 매수자는 4억~5억원 가량의 담보대출을 이용하는 반면 대형 면적매수자는 대출 없이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강북 인기 주거지역에서도 대출에 의존하지 않는 거래가 속속 나오는 중이다. 재개발 후 직주근접 단지로 각광받는 교남동 ‘경희궁자이’도 올여름 현금거래됐다. 2단지 전용 84㎡를 보면 매수자가 전세금 5억7000만원을 끼고 나머지 8억원을 현금으로 냈다. 총 매매가는 13억6000만원으로 종전 최고가 거래다. 이상식 상경공인 대표는 “지난달 18억7000만원에 거래된 전용 116㎡는 매수인이 전세금 1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대출 없이 현금으로 냈다”면서 “강남 등지에서 온 자산가가 매입하거나 단지 내 세입자가 매매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1차 아파트. 한경DB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1차 아파트. 한경DB
재건축이 활발히 진행 중인 개포동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열에 한 건은 은행의 도움을 받지 않는 거래다. 정지심 태양공인 대표는 “최근 ‘개포주공1단지’ 전용 42㎡는 최고 18억원까지 현금으로 거래됐다”면서 “대형 면적대는 담보대출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 전용 42㎡(재건축 후 전용 84㎡를 배정받는 매물) 호가는 18억원 선으로 추가분담금은 2억원가량이다. 전셋값은 전셋값은 1억원 안팎이다.

◆서울 절반은 대출 없어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정책지표조사인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 중인 가구의 절반가량인 51.3%는 부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채를 가진 나머지 48.7% 가구에선 주거 안정을 위해 대출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았다. 주택 마련 37.7%, 전·월세보증금마련 26.5% 등이다.

또 부자 동네일수록 집을 살 때 대출에 적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평구 등 서북권의 대출의존 비율은 39.9%로 가장 높았다. 이어 동북권(39.5%)과 도심권(38.5%), 서남권(36.5%) 순이었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가 속한 동남권은 35.6%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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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중개업소들은 올해 들어 연이어 대출 문턱이 높아졌지만 강남 등 고가주택 수요엔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신만호 중앙공인 대표는 “지역별 온도차가 있겠지만 강남엔 대출규제와 관계없이 자금력 있는 수요자는 여전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1주택 가구의 기존 주택 2년 내 처분 조건이나 무주택 가구의 2년 내 전입(공시가 9억 이상) 조건 등 까다로워진 대출 규제가 오히려 실수요자들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정지심 태양공인 대표는 “수서역세권 토지보상금이 풀리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는 자금력 있는 매수인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