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서울 신림동 강남아파트. 1974년 준공한 강남아파트는 안전진단 결과 재난위험시설(D등급) 판정을 받았다.  /한경DB
건물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서울 신림동 강남아파트. 1974년 준공한 강남아파트는 안전진단 결과 재난위험시설(D등급) 판정을 받았다. /한경DB
정부의 이주비 대출 조이기 영향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차질을 빚는 정비사업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8·2대책)’에서 정비사업의 이주비 지급 한도를 기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에서 40%로 낮췄다. 세입자 전세보증금, 기존 주택담보대출 등을 갚기 부족한 금액이어서 조합원들의 이주가 지연되고 있다. 이주가 지연되는 정비사업지 중에는 재난위험시설(D등급)로 분류된 곳도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붕괴위험 아파트 이주비에 발목 잡혀

지난 3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서울 신림동 강남아파트는 이주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추가 이주비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조합원과 세입자 이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 관계자는 “전수조사 결과 조합원 802명 중 100여 명 정도가 LTV 40%를 초과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출한도를 초과한 금액의 합산액은 120억원 정도인데 이 비용을 마련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은 기업형임대주택 매출채권 유동화를 통해 조합원별로 부족한 이주비를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기업형임대주택 매매(분양)대금은 사업비 보증약정 및 매매계약 조건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양도하도록 돼 있어 무산됐다.

1974년 준공한 강남아파트는 2001년 재난위험시설(D등급) 진단을 받았다. 조합 관계자는 “최근 폭우가 왔을 때 지하에 물이 차고 곳곳에 물이 새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며 “아직 이주하지 못한 130여 명의 조합원과 세입자들의 안전이 염려된다”고 강조했다. 조합은 추가 이주비 대출 여부에 상관없이 다음달 3~5일 이주공고를 내고 올해 안에 이주를 마친다는 방침을 세웠다. 조합 관계자는 “당초 조합원들은 LTV 60%에 맞춰 대출을 받고 이주를 준비해왔다”며 “갑자기 강화된 규정 때문에 12년을 노력해 온 사업이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고 답답해했다.
'붕괴 위험'에도… 재건축 이주 막는 대출규제
◆“사채 쓰는 조합원까지 등장”

서울 방배6구역 재건축조합도 이주비 대출 규제 강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5월4일 이주를 시작한 조합은 당초 다음달 3일을 이주 완료 시점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달 초로 예정된 증권사의 추가 이주비 400억원 대출이 무산되면서 이주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합원 150여 명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등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은 지난달 18일 총회에서 추가 이주비 대출을 받기로 의결했지만 대출금 지급사인 NH투자증권이 지난 1일 포기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됐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추가 대출에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세입자 보증금을 내주기 위해 사채까지 알아보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갑작스러운 규제 강화로 사업 진행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6월 이주를 시작한 방배5구역 재건축 조합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조합은 지난달 말 임시총회를 열고 신한금융투자 등을 추가 이주비 대출회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최근 신한금융투자가 태도를 바꾸면서 이주비 대출이 무산됐다. 조합 관계자는 “대출도 조이고 자금조달 창구도 막으면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이주비 대출 40% 기준을 감정가가 아니라 관리처분한 금액으로 산정하는 등의 완화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