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에 반대해 이사를 안 가고 버틴 조합원들에게 조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사 지연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재건축 사업 진행을 둘러싼 분쟁 해결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란 업계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오모씨 등 조합원 5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이 이주를 거부해 공사가 지연된 기간 동안 조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 부분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해당 재건축 조합과 조합원 간의 법적 다툼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조합원들은 용산구청이 내린 재건축 사업시행·관리처분 계획 인가 처분에 하자가 있다며 2010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상고심까지 가서 적법한 처분이라는 결론을 받자 조합은 소송 중이란 명분으로 이주를 거부했던 오씨 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나섰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으나 대법원은 조합원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반대파 조합원들이 부동산 인도일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인도 의무를 지체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피고들은) 인도가 지체된 기간 동안 늘어난 기본이주비 및 사업비 대출금 이자에 대해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재건축을 반대하며 공사를 지연시킨 조합원에게 금전적 책임을 물은 첫 대법원 판례다. 원고측 대리를 맡은 유동규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조합이 입은 손해의 범위와 액수를 명확하게 특정해 청구했기 때문에 배상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며 “비슷한 소송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나온 이번 확정 판결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진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의 성패는 신속한 분쟁 해결을 통한 착공에 달려 있단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사업비에 대한 하루치 이자만 해도 만만치 않아서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재건축에 반대하는 조합원들 입장에선 까닥하다 배상할 여지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반대하면서 버티기 부담스러워졌다”며 “조합으로선 이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평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