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곡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 한경DB
서울 도곡동의 아파트 밀집 지역. 한경DB
서울 반포에 사는 김 모씨는 최근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세 가구 중 잠실 아파트 한 가구를 아들에게 증여했다. 놔두자니 세금 ‘폭탄’을 맞을까 걱정되고, 팔자니 앞으로 오를 시세차익이 아까워서다. 그는 “언젠가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정부가 보유세를 재편한다고 하니 증여를 서두르기로 했다”며 “주변에서도 이참에 증여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증여 사상 최고치 행진

보유세 개편을 앞두고 부동산 증여가 급증하고 있다. 2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5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6538건으로, 전년 동기(2741건) 대비 2.38배 늘었다. 2016~2017년 서울 아파트 월평균 증여 건수는 564건이었는데 올 들어선 한 달에 1307건씩 증여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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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이른바 ‘강남4구’에서는 1~5월 증여된 아파트(2539건)가 작년 한 해 증여 건수(2429건)보다 많았다. 서울 25개 자치구 증여 물량 중 39%가 강남4구에 몰렸다.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작년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7408건으로, 2006년 한국감정원이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았다. 올 들어선 1~5월 증여 건수가 이미 작년 한 해 수치의 88%를 넘겼다. 아파트 거래는 계약 60일 내에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 증여 집계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전국 증여 건수는 1~5월 2만6217건으로, 전년 동기(1만7369건)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부산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약 두 배(416건)가 증여됐다. 세종시에선 지난달에만 증여가 99건 이뤄졌다. 작년 5월(27건)보다 약 3.6배 늘어난 수치다.

◆“팔기 아깝고 임대는 실익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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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증여가 급증한 것은 시세차익 기대가 여전해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최근 고가 아파트 위주로 증여 거래 증가세가 뚜렷하다”며 “보유세 인상이 부담스럽지만 아직 아파트를 매도하기는 아깝다고 느끼는 이들이 증여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반포동 B공인 대표는 “지난 1년간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약 4억원, 신반포3차 전용 104㎡는 5억원 가까이 가격이 급등했다”며 “시세차익이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이어서 매도가 아니라 증여를 문의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양도소득세 부담이 높아 집을 쉽사리 팔기 어려운 것도 원인이다. 김종필 세무사는 “지난 4월부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양도세 중과가 시행된 터라 거래에 따르는 부담이 커졌다“며 ”자산가들은 막대한 세금을 내면서 파는 것보다 자녀에게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도를 원치 않는 자산가에겐 현실적으로 증여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하더라도 현행 제도에선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여야 임대소득세·보유세 등을 감면받을 수 있다. 원종훈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세무팀장은 “강남권에선 공시가격 6억원 이상인 주택이 대부분”이라며 “임대사업자 등록의 매력이 거의 없다 보니 증여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담부증여·지분증여 활발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나 이주비가 나오는 재건축 단지 일대에선 부담부증여가 활발하다. 전세보증금이나 이주비 등 부채를 포함해 아파트를 증여할 경우 과세표준에 따라 세금을 줄일 수 있어서다. 증여받은 이는 전체 가액에서 채무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내면 된다. 공시가격 12억원 상당의 아파트에 7억원 전세를 안은채 부담부증여할 경우엔 증여세액은 약 7600만원이다. 증여받은 이가 향후 갚아야하는 전세보증금을 주택가액에서 빼고 남은 5억원에 대해서만 증여세가 나와서다. 만약 빚 없이 공시가격 12억원 짜리 아파트를 그대로 증여한다면 증여세가 2억7000만원 가량으로 확 뛴다. 원 세무팀장은 “부담부증여는 전세가율이 높은 갭투자 물건을 처리하는 데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포·잠원 등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밀집한 곳에선 1+1 재건축을 겨냥해 증여 전략을 짜는 이들도 나오는 추세다. 1+1 재건축이 가능한 조합원 매물을 부모와 자식 공동명의로 각각 50%씩 투자해 사고, 새 단지 입주 후 지분의 일부나 전부를 자식에게 증여하는 식이다. 반포 A공인 관계자는 “증여자에게도 양도소득세가 붙긴 하지만, 증여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경우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므로 크게 개의치는 않는 분위기”라며 “보유세 개편을 앞두고 이참에 겸사겸사 증여에 나서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