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전원생활 문답 (6)
산중 미용실 앞에 선 정춘일 작가와 김은숙 원장 부부. 김경래 대표 제공

산중 미용실 앞에 선 정춘일 작가와 김은숙 원장 부부. 김경래 대표 제공

북한강을 뒤로 하고 좁은 마을길을 오른다. 입구에 보일 듯 말 듯 미용실 간판이 있다. 산중에 있는 ‘풍경이있는산마루미용실’로 가는 길이다.

산이 감싸고 있는 집 마당에 로봇을 닮은 철물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말을 탄 사람도 있고 창을 든 사람도 있다. 기타를 치는 사람도 있다. 버려지고 폐품이 된 생활용품들을 이용한 ‘정크아트’ 조각 작품들이다.

산중 미용실 원장 김은숙 씨는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유명 미용실에서 근무했다. 손님 중에는 내노라하는 부잣집이나 권력가 사모님들이 많았다. 자연스레 눈이 높아졌고 명품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때 화가인 남자를 만났다. 가난한 화가는 그림 그리는 것은 접어두고 인테리어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둘은 남들보다 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아이들이 생겼다. 일로 바빴지만 아이 교육이라면 극성스러웠다. 그렇게 여느 젊은 엄마들처럼 아이들 교육을 걱정하고, 명품 가방 들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며 도시에서만 살 줄 알았다. 그 때까지 한 번도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화가 남편은 다니던 인테리어회사가 IMF사태로 도산을 하자 벽화 그리는 회사를 차렸다. 그러다 집짓는 일도 맡아 전국을 다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시골 가 살자고 했다. 앞이 캄캄했다. 아는 것도 준비한 것도 없어 버텼다. 남편은 집요하게 설득하고 때론 반협박을 했다. 아이들은 벌써 셋이었다. 큰 애는 초등학교를 막 입학해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 교육이 가장 먼저 걱정됐다.

그러나 남편 따라 시골여행도 하고 시골에 집을 얻어 장기간 체류도 해보면서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서 살던 집을 팔고 무작정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와 셋방을 얻었다. 그 다음 근교로 땅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만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터다. 8년 전 얘기다.
미용실 앞마당. 김경래 대표 제공

미용실 앞마당. 김경래 대표 제공

쓰러져 가는 창고와 마구간만 덩그렇게 있는 마을 끝자락 잡초 우거진 비탈밭이었다. 처음에는 이곳서 어찌 살까 많이 걱정했지만, 내 땅이 생겼다는 것이 신나 힘든 줄 모르고 터를 정리했다. 창고와 마구간을 남편이 손수 고쳐 집을 지었고 이삿짐을 옮겼다.

그러던 중 예전 서울 압구정동 미용실서 일할 때 단골로 다니던 손님들이 시골마을까지 머리 손질을 해달라며 찾아왔다. 미용실도 아닌 산중에서 도구도 제품도 없이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은 어려웠고 또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살던 집을 개조해 미용실을 차렸다.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산중 미용실이다. 살림은 바로 아래에 새로 집을 지어 옮겼다. 늘 그랬듯이 집은 손재주가 좋은 남편이 주변에 있는 자재들을 모아 직접 지었다.

남편은 남의 집도 지어주고 인테리어도 해 주는 틈틈이 작품 활동을 했다. 우리나라 정크아트(junk art) 장르를 개척한 조형예술가 정춘일 작가다.
집 곳곳에 남편 정춘일 작가의 정크아트 작품이 서 있다. 김경래 대표 제공

집 곳곳에 남편 정춘일 작가의 정크아트 작품이 서 있다. 김경래 대표 제공

춘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유학해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원래 순수미술을 했는데 정크아트로 전향해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전도 많이 했고 작년에는 고향인 춘천에서 큰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는 요즘 토종벌에 빠져있다. 집 주변으로 벌통 20여개를 놓고 벌을 친다. 아직까지 수익은 없지만 앞으로는 꿀을 따 팔기도 하고 찻집도 열 생각이다. 이따금 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붓지만 벌통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또 다른 희망도 생긴다.

작년에는 농업경영체 등록도 했다. 정식으로 농업인 인증을 받은 것이다. 정 작가는 내년이면 오십이 된다. 그 때쯤이면 벌통에서 꿀을 잔뜩 따고 있을지 모른다. 여섯 살 아래 미용사 아내는 김씨는 그 꿀로 찻집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을 것이다. 이들 부부가 시골서 꾸는 새로운 꿈이다.

텃밭 농사도 짓지만 버겁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관리하다 보니 풀밭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서 농사짓는 분들이 풀씨 날아온다며 농약을 치라 성화다. 농사는 제대로 안 짓고 여자는 산속에 미용실을 차려놓고 남자는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자르고 용접하고 붙이고 뚝딱 거리고 있으니 마을사람들이 보기에는 낮도깨비 같은 부부다. 그것이 원주민 이웃과 어울려 사는 어려움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쫒아가지 못할 때 고민스럽다.

부부는 사람들을 좋아해 다녀가는 사람들이 많다. 욕심 없이 전원생활 하는 이들 부부의 모습을 부럽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말해 준다.

지금이야 흘러가는 대로 보여지는 대로 살아도 평온하고 유유자적한 전원생활이지만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 지는 과정, 이렇게 만들어진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살았던 8년의 시간은 늘 불안했고 때론 전쟁과 같았다.

산중 미용실 앞마당 남향 볕이 좋고 나무 그늘도 좋다. 화가와 미용사는 그늘에 앉아 차를 마신다. 그 모습들 그대로 남들에게 보여 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마당에 서 있는 조각 작품들이나 미용실이나 집이나 의도적으로 정돈한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있는 그대로 모자란 대로 불편한 대로 살아도 모두 자연스럽다. 그래서 편하다.

* 전원생활 문답

[문] 벌을 쳐도 농업인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나요?

[답] 귀농이나 귀촌해 농업인으로 인정을 받고 농지원부와 경영체등록을 해 놓으면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이나 자녀 대학 장학금 등을 지원받을 수 있고 농업용 농기계 면세유를 구입할 수 있는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지를 구입하고 팔 때 양도세와 취득세 감면, 개발할 때는 농지보전금 감면도 받습니다.

법에서 정한 농민은 △1천㎡ 이상의 농지에 농작물 경작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지에 330㎡ 이상의 고정식 온실 버섯재배사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하여 농작물을 경작 재배하는 사람 △소나 말 등 대가축 2두, 돼지 염소 등 중가축 10두, 토끼 등 작은 가축은 100두 닭오리 등 가금류 1천수, 꿀벌(토종 10군, 양봉 20군)을 사육하거나 △1년 중 120일 이상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사람 등입니다.

[문]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답] 2009년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지원부를 없애고 이를 전산화한 '농업경영체등록'으로 대체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농지원부와 병행되고 있습니다.

농지원부는 농지 경작면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농지 면적 1천m²(300평) 이상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다년생 식물 재배 △농지에 330m² 이상의 고정식 온실 등 농업용 시설을 설치하여 재배 △지목(임야, 나대지 등)에 관계없이 실제 농업 목적으로 경작한 지 3년 경과농지에 330m² 이상의 고정식 온실 등 농업용 시설을 설치하여 재배하는 경우 주소지 읍면동사무소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농업경영체 등록은 △1천m² 이상 자경 △연간 농산물 판매 120만원 이상 △연간 90일 이상 농업 종사자 등이면 가능한데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합니다.

농지원부 작성 후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글=김경래 OK시골 대표
정리=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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