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이 이란 정유회사에서 수주한 2조2000억원 규모 공사계약을 해지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여파로 금융 조달에 실패해서다.

대림산업은 이란 이스파한정유사와 지난해 3월 체결한 공사 수주 계약을 해지했다고 1일 공시했다. 해지 금액은 2조2000억원으로 2015년 말 대림산업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의 23.48% 규모다.

이 사업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약 400㎞ 거리에 있는 이스파한 지역에서 가동 중인 정유시설에 설비를 추가 설치하는 공사다. 대림산업은 설계, 자재구매, 시공, 금융조달 주선 업무를 할 예정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이란 경제제재 해제 이후 글로벌 건설사가 이란에서 처음 따낸 사업이었다.

대림산업은 2007년 이스파한 정유시설 관련 공사를 이란 국영 정유회사인 NTORDC 등으로부터 독일 기업 두 곳 등과 함께 수주했으나 2010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란 경제·금융제재로 사업이 일몰됐다. 이후 2016년 이란 제재가 해제되면서 이스파한 정유공장 개선공사 낙찰통지서(LOA)를 접수한 데 이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사업 논의를 재개했다. 작년 3월에는 수주 계약서에 최종 서명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본계약 발효 전제조건인 금융조달이 완료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됐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사업 관련 금융조달을 완료하는 것이 선계약 조건이었는데, 완료 기한인 지난달 31일까지 발주처와 국내외 금융회사 등 사이에 금융약정이 완료되지 않아 계약이 자동으로 무효화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뒤 미국의 이란 금융제재가 본격 재개된 탓이 컸다. 국내외 금융회사들은 사업과 공사비 회수 안정성 등이 보장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은 이번 계약 해지가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미국이 이란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고 보수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작년 10월께부터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란에 사실상 경제적 압박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이미 이란공사를 회사 전체 수주 목표와 매출 등에서 제외한 상태”라며 “착공 이전 단계에서 사업이 엎어졌기 때문에 인력이 별도 투입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마친 사업 설계는 사업주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돼있으므로 대림산업이 손해를 본 것은 딱히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 측과 MOU를 체결한 53억달러 규모의 이스파한~아와즈 철도사업, 19억달러 규모의 박티아리 수력발전소 프로젝트 등은 본계약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일각에선 이번 계약 해지를 시작으로 국내 건설사의 이란 진출길이 막힐 우려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이란 제재가 풀리기 전엔 사업 추진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해 3월 수주한 이란 사우스파12 2단계 확장공사가 그런 예다. 수주 금액이 3조8000억원으로 국내 건설사가 이란에서 따낸 공사 중 최대 규모지만 미국의 제재 등으로 금융조달 단계에서 발목이 묶여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