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부촌 지도가 바뀌고 있다. 2기 재건축 단지 입주가 속속 마무리되는 영향이다. 새 아파트들이 그동안 일대 집값을 선도하던 1기 재건축 단지를 밀어내고 지역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2기 재건축 입주 본격화… 서초·강남·강동 '부촌지도'를 바꿨다
‘황제’ 자리 밀려난 래미안퍼스티지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강남 전역에서 아파트 매매값 순위 변동이 한창이다. 잠원동에선 다음달 입주를 앞둔 ‘아크로리버뷰’가 신흥 대장 아파트로 올라서고 있다. 전용면적 84㎡ 분양권은 24억~27억원을 호가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분양가와 비교하면 10억원 정도 올랐다. 지난해 말 20억원에 실거래된 뒤로 호가가 5억원 정도 더 올랐다. 중·고층에서 한강을 세 방향으로 볼 수 있는 주택형은 최근 27억원까지 호가한다. 그동안 잠원동에선 설악아파트를 재건축한 ‘잠원롯데캐슬갤럭시’가 대장 격이었다. 하지만 잠원동에서 2기 재건축 단지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가격이나 선호도 면에서 크게 밀렸다.

반포동에선 ‘래미안퍼스티지’가 10년 가까이 지켜오던 아성이 깨졌다. 인근에 2년 전 입주한 ‘아크로리버파크’가 왕좌를 가져갔다.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올해 22억5000만~24억원 선에서 거래된 반면 아크로리버파크는 23억8000만~25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 2월엔 26억8000만원에 실거래되며 최고가 기록을 썼다. 아크로리버파크는 새 아파트인 데다 한강공원 접근성과 조망권이 뛰어나다. 강남 한강변 아파트로는 드물게 최고 38층으로 지어졌고 우수 디자인을 인정받아 발코니 면적이 넓은 편이다.

대치·도곡·잠실 등에서도 랜드마크 바뀌어

도곡동과 대치동에서도 왕좌가 바뀌었다. 2015년 입주한 ‘래미안대치팰리스’는 ‘도곡렉슬’을 밀어냈다.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지난 1월 22억5000만원에 팔려 지역에서 처음으로 20억원 선을 넘겼다. 도곡렉슬의 같은 주택형이 한 번도 넘지 못한 가격이다. 대치동 C공인 관계자는 “은마 등 주변 아파트 재건축에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래미안대치팰리스가 당분간 랜드마크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동에서도 1기 재건축 단지들이 패권을 내놓고 있다. 고덕지구에선 재건축이 가장 빨랐던 고덕아이파크(옛 고덕주공 1단지)가 작년 초까지 대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근 고덕시영을 재건축한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가 지난해 1월 입주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용 84㎡는 지역 최초로 10억원을 넘겼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9호선 4단계 재료에 힘입어 고덕아이파크가 최근 많이 올랐지만, 신축인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의 호가가 여전히 조금 더 높다”고 말했다.

개포동과 일원동은 새로운 부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변 아파트가 한꺼번에 재건축을 하면서 시너지를 내서다. 낡은 주공아파트가 즐비하던 곳이 강남 속의 미니 신도시로 탈바꿈 중이다. 전용 84㎡ 아파트 호가가 20억원을 줄줄이 넘어섰다.

잠실에선 1기 재건축 아파트인 ‘잠실엘스’(옛 잠실주공1단지 재건축)가 ‘송파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 재건축)에 쫓기고 있다. 연초 18억원에 근접했던 잠실엘스 전용 84㎡의 가격은 지난달 16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반면 송파헬리오시티 같은 주택형은 3월 15억원까지 올라 분양가에 최고 6억원가량 웃돈이 붙었다.

“2기 재건축 인기 오래 갈 듯”

2기 재건축 아파트의 전성기는 1기 재건축 아파트보다 오래 갈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과 안전진단 강화, 조합원지위 양도 금지 등 걸림돌이 많아지면서 후속 단지의 재건축이 당분간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서울시의 까다로운 층수와 통경축 규제도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압구정동 현대 등 한강변 아파트들이 입지 면에서 2기 재건축 아파트보다 낫다는 분석도 있지만 규제가 계속되는 한 쉽게 재건축에 나서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앞으로 랜드마크가 될 만한 요지의 아파트도 그리 많지 않다”며 “후속 재건축 사업이 지연될수록 2기 재건축 단지의 가치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