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접경지 일대의 토지 거래가 늘고 있다. 강원 고성군의 한 토지. 최진석 기자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접경지 일대의 토지 거래가 늘고 있다. 강원 고성군의 한 토지. 최진석 기자
남북한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5일 강원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소망공인중개업소. 오전 10시 문이 열리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통일전망대 아래쪽 토지를 사고 싶다”는 말이 얼핏 들렸다. 통화는 10분 가까이 길게 이어졌다. 통화를 마친 이영탁 사장은 “서울에 사는 분인데 며칠 전부터 1억원 예산으로 현내면 제진리 땅을 찾고 있다”며 “토지 소유자들은 3.3㎡(평)당 20만~30만원대에 팔기를 원하고 있어 10만원대로 3300㎡ 규모 땅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접경지 땅 봄바람

"민통선 인근 땅 봐달라"… 고성·파주 투자자 몰려 한 달 새 거래량 2배
이날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을 끼고 있는 고성군 일대에선 투자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고성군 일대 중개업소들은 “작년까지 민통선 인근 토지를 찾는 사람이 1년에 두세 명 있었다”며 “올해는 하루평균 3~4건의 상담전화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현내면 명파리 뉴금강산부동산컨설팅사무소에선 50대 남성 투자자 2명을 만났다. 이들은 “투자할 만한 토지 또는 임야를 찾고 있는데 시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 사무소 양정운 대표는 “금강산 관광을 하던 시기에 명호리와 사천리, 제진리 등 민통선 안쪽에 있는 땅이 입지에 따라 최고 3.3㎡당 30만~35만원에서 최저 3만원에 팔렸다”며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거래가 뚝 끊겼는데 최근 들어 다시 땅을 찾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명파리 주민 김만섭 씨는 “남북 정상회담이 확정되면서 땅을 사려는 외지 사람들의 마을 방문이 잦아졌다”며 “2006~2007년 금강산 관광 때 이후 10여 년 만에 보는 광경”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과 인접한 경기 파주시 분위기도 비슷했다. 파주 군내면 통일촌 주변 토지는 3.3㎡당 10만~20만원 선. 입지에 따라 40만~50만원에도 거래되고 있다는 게 중개업소 측 설명이다. 인근 T공인 관계자는 “오늘 하루 동안 대여섯 통의 토지 상담 전화를 받았다”며 “남북 정상회담이 확정된 이후 호가가 10~20% 안팎 올랐다”고 전했다.

이런 틈을 타 벌써부터 쓸모없는 임야를 쪼개서 파는 기획부동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기획부동산은 이날 일간지에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일대 땅을 판다는 광고를 실었다.

법원 경매시장에서도 접경지 땅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 시작했다. 이달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선 파주시 탄현면 소재 토지가 감정가격(9억7456만원)의 129%인 12억5850만원에 팔렸다. 감정가격 4346만원인 철원군 서면 자등리 토지는 감정가의 2.3배인 1억100만원에 낙찰됐다.

◆접경지 거래량 두세 배 급증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고성군의 토지 거래량은 625건으로 지난 2월(353건)보다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작년 3월(321건)과 비교해도 두 배가량으로 많다. 거래가 늘어난 건 고성군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전체 토지 거래량은 지난달 1만5291건을 기록했다. 평창올림픽 특수가 한창이던 작년 11월~올해 1월 평균 거래량(1만4225건)보다 1000건 이상 많았다.

경기도 접경지역 거래량도 급증했다. 경기 연천군에서 지난달 596건의 토지가 거래됐다. 전달(273건)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파주시 토지 거래량은 지난달 4628건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감정원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6년 이후 최대치다.

김종율 김종율아카데미 대표는 “파주 도시기본계획을 보면 민통선(DMZ) 일대는 생태관광지로 조성될 예정이어서 개발되기 어렵다”며 “싼 땅을 사놓고 언젠가 잭팟이 터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투기이자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고성군에선 접경지 토지 투자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가 많았다.

현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이 활발할 때 외지인들이 고성군 일대 토지를 대거 사들였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땅값이 3분의 1 토막 났지만 거래마저 끊겨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아직 호가가 10년 전 가격을 턱없이 밑돌아 토지 소유자들이 호가가 더 오르길 기다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고성=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