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아파트 특별공급 물량 당첨자에 대한 위장전입 의심 사례를 파악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분양한 ‘디에이치자이 개포’ 모델하우스. 한경DB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특별공급 물량 당첨자에 대한 위장전입 의심 사례를 파악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분양한 ‘디에이치자이 개포’ 모델하우스. 한경DB
서울 ‘디에이치자이 개포’, 경기 ‘과천 위버필드’ 등의 특별공급 물량 당첨자 상당수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국토교통부가 이들을 위장전입 등 불법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부동산 특별사법경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 위장전입 외에도 임신서류 위조, 세대분리를 통한 부양가족 늘리기, 잔여 물량 가로채기, 청약통장 불법매매 등 불법·편법 행위가 만연해 있어 청약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부양가족 늘리기 편법 난무

가점 높이려고 세대분리·위장전입… '편법 청약' 검증시스템이 없다
국토부는 ‘디에이치자이 개포’를 비롯해 서울 ‘논현 아이파크’,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 ‘당산 센트럴 아이파크’, ‘과천 위버필드’ 등 5개 단지의 특별공급 당첨자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했다고 19일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십 명의 당첨자들이 다른 지역에 살면서 주소지를 옮기는 위장전입 등 시장 교란행위를 통해 당첨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분양현장에선 특별공급뿐 아니라 일반청약에서도 위장전입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부부가 아파트 당첨을 노리고 세대분리를 통해 부양가족을 늘리는 수법이 대표적인 방식이다. 예컨대 부인이 친정으로 세대를 분리하면 직계존속인 부모를 부양가족으로 둘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청약할 때 남편의 주민등록에 등재된 자녀와 함께 부인의 부모까지 부양가족으로 합산돼 당첨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강남 등 재건축 단지 분양을 노리고 이 같은 세대분리를 해놓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부부가 함께 거주하지 않더라도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로만 확인할 수밖에 없어 이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작년 서울의 한 분양현장에선 다자녀 특별공급 신청자 중 서류를 위조한 사례가 드러났다. 당첨자는 임신 8주차이며 쌍둥이 여자아이를 임신했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임신 후 최소 14주는 돼야 성별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꼬리가 밟혔다.

◆‘떴다방’ 작전 활개

가점 높이려고 세대분리·위장전입… '편법 청약' 검증시스템이 없다
‘떴다방’(이동식중개업소)의 ‘작전통장’도 청약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편법의 하나로 꼽힌다. 청약 시 실제 가점이 낮은데도 당첨권에 근접한 수준으로 부양가족, 무주택기간 등을 일부러 높여 입력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부적격자가 다수 발생한다. 이때 다수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떴다방들이 잔여물량을 받아가는 식이다. A건설사 분양소장은 “허위 가점을 기입하면 자동으로 걸러내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국토부나 금융결제원 등에 수차례 시스템 개선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떴다방들이 청약가점이 높은 청약통장을 사들이는 통장 거래 행위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디에이치자이 개포’ 장애인 특별공급 물량의 한 당첨자는 나이가 어려 자금조달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최근 인기 단지 청약현장을 중심으로 주소지를 여러 차례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C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떴다방들이 5000만원 넘게 주고 특별공급 대상자의 통장을 매입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잔여 물량에 대한 기준도 미흡해 떴다방 손으로 대거 넘어가고 있다. 작년 7월에 분양한 ‘판교더샵퍼스트파크’에서도 30개의 잔여 물량이 나왔으나 추첨 분양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물량이 현장에 모인 떴다방 업자들에게 돌아갔다.

◆국토부 시스템 정비 방관

청약 이후 부적격 당첨자를 가려내는 단계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당첨자 검수 과정은 분양업체가 맡고 있다. 국토부와 금융결제원 등은 당첨자들에 대한 5년 내 당첨 사실, 주택소유 여부 등을 입증할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만 해당 업체에 제공한다. 정부는 지침만 내리고 업체가 알아서 하는 구조다.

대다수의 건설사들은 이를 분양대행사에 맡기고 있다. B분양대행사 관계자는 “등기부등본 등 검수 과정에 필요한 서류가 많을 뿐 아니라 이것만으로 위장전입이나 부양가족을 편법으로 늘린 사례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약 시스템에 이 같은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이유는 부처 간 업무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국토부를 비롯해 법무부, 행정자치부, 금융결제원 등 청약업무와 관련된 기관이 각각 확보하고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를 호환해 통합 운영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D건설사 관계자는 “전산화 작업만 제대로 갖춰져도 부적격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며 “오래전부터 청약 시스템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선/서기열/선한결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