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 덕이동 양우씨네플렉스. 네이버 거리뷰 캡처
경기 고양 덕이동 양우씨네플렉스. 네이버 거리뷰 캡처
상가 투자의 발단은 세금 문제였다. 10여 년 전 김모 씨(60세) 부부는 서울 용산구와 고양 일산서구에 아파트를 각각 한 채씩 소유하고 있었다. 일산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전세로 주고 있었다. 2007년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상향되면서 김 씨 부부에게 고민이 생겼다. 다음 해부터 아파트를 팔면 50%의 양도소득세(주민세 포함 55%)를 내야 했던 까닭이다.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서울 한강변 아파트(용산구 산천동 ‘리버힐 삼성’ 전용 84㎡)를 선뜻 팔아 치우기 쉽지 않았다.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인 김 씨의 남편은 "세금 폭탄을 피하자"며 아파트를 팔자고 졸랐다. 고민 끝에 김 씨는 처분에 동의했다.

아파트를 팔아 5억2000만원이 생겼다. 이제 막 50대에 접어들었던 부부는 이 돈을 잘 굴려 노후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살고 있던 고양시 인근 땅을 알아봤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토지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보름 넘게 임장을 다니며 중개업소를 들쑤셔도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그러던 중 친한 후배가 “일산에서 부동산을 제일 잘 보는 사람”이라며 한 중개업자를 소개해줬다. 이 중개업자는 자신을 상가 전문가라고 자랑했다.

이 중개업자가 추천한 물건은 고양 일산서구 덕이동에서 분양 중인 근린상가(양우씨네플렉스)였다. 이 상가 인근엔 2000년대 초반 덕이동 로데오거리가 조성되고 있었다. 몇몇 업체가 토지를 매입해 가건물을 짓고 의류 상업시설로 분양하면서다. 할인 매장 형태로 정가보다 30~50% 저렴하게 의류를 판매했다. 경기가 위축되고 의류 재고 물량이 늘어날수록 덕이동 로데오를 찾는 손님도 늘어났다.

로데오거리에서 도보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은 양우씨네플렉스는 로데오거리가 활황이었던 2006년 분양됐다. 로데오거리에 밀집한 가건물 형태 매장과 구분되는 스트리트형 독립 매장 형태였다. 휴식 공간, 편의 시설, 문화 공간 등을 한 데 모인 원스톱 쇼핑시설을 표방했다.
양우씨네플렉스 분양 당시 조감도
양우씨네플렉스 분양 당시 조감도
중개업자는 핑크빛 미래를 장담했다. 미국 번화가에서 볼 법한 상가 건물들이 멋지게 들어선다는 주장이었다. 그 중개업자도 이미 그곳 상가 3실을 갖고 있었다. 아직 흙먼지만 날리는 허허벌판에 그런 상권이 생긴다니 고개가 갸우뚱했다. “고민 좀 더 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분양 자료를 대충 핸드백에 구겨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홍보 팸플릿에 있는 탤런트 최수종이 눈에 띄었다. 실투자금 3억9000만원만 있으면 보증금 5000만원에 매월 280만원이 넘는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중개업자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살 땅도 마땅치 않은데 상가에 투자해볼까?”

김 씨는 중개업자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 하나를 사기로 결정했다. 1층 상가 전용 41㎡ 물건이었다. 분양가는 4억1000만원이었다. 평당 분양가가 4000만원에 육박했다. 프리미엄도 이미 1000만원 붙어있었다. 뜻이 섰기 때문에 가격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1억6000만원의 대출을 끼고 상가를 매입했다. 부가세를 3000만원 환급받은 점을 감안하면 3억9000만원에 상가를 산 셈이었다.

김 씨는 상가 입점이 시작하는 2007년 9월이면 월 300만원 정도의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동산투자 고수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생각에 마음도 들떴다.

2007년 9월 11일 등기를 마쳤다. 이제 매달 280만 원씩 임대료를 내줄 임차인만 구하면 됐다. 상권이 활성화돼 임대수익뿐만 아니라 시세차익까지 누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임대료가 비싸서인지 가끔 부동산을 통해 ‘임대료를 낮춰줄 수 있느냐’는 문의만 올 뿐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1년이 지나도 상황은 비슷했다. 같은 건물 다른 상가도 처지가 같았다. 매달 50만원이 넘는 대출 이자와 관리비 12~13만원을 내고 있던 터라 임대료를 쉽게 내릴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부동산 시장이 초토화됐다. 김 씨의 상가에는 아예 임차 문의조차 끊겼다.

엎친 데 덮쳤다고 할까. 가까운 파주에 신세계와 롯데의 프리미엄 아울렛 등이 개장하면서 덕이동 상권이 고사하기 시작했다. 김 씨가 산 상가는 탄현지구를 비롯한 주변 주거 지역과 떨어져 있어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버스정류장마저 상가에서 5~10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김 씨의 생애 첫 상가는 3년간 공실 상태로 방치됐다. 관리비, 은행이자는 서울에 있던 아파트를 팔았던 돈으로 메웠다. 남편이 벌어온 돈도 대부분 대출 상환에 썼다. 남편은 “왜 이런 곳에 수억원을 썼느냐”며 밥상에서 김 씨를 힐책했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야만 했다.

어느 날 김 씨에게 상가 매입을 권유했던 중개업자가 가지고 있던 상가 2실이 은행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낙찰가격은 6000만~7000만원이었다.

결국 김 씨는 임대료를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내렸다. 한참을 지난 2010년 한 청소용역업체가 상가를 빌리겠다고 했다. 김 씨는 이후 7년째 임차인에게 월세를 올려 달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관리비를 안내도 되니 그저 있어 주는 게 고마울 뿐이었다.

임대료를 40만원으로 내린 사이 4억원 대에 사들인 상가의 가치는 1억까지 떨어졌다. 부끄럽고 분했다. “그냥 서울 집을 갖고만 있어도 노후 대비가 됐을 겁니다. 엉뚱한 짓을 해 노후 대비를 망친 셈이지요. 상가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저는 상가에 대해 정말 몰랐어요. 부동산 중개업자 얘기만 듣고 상권, 유동인구, 동선 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해 후회스럽습니다”

생애 첫 상가에 투자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김 씨 부부는 30억원 대 부동산을 소유한 자산가가 됐다. 아파트, 상가, 토지 등 보유 품목도 다양하다. 김 씨는 “섣불리 상가를 샀던 경험이 계기가 돼 부동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부동산 재테크 카페에 가입해 온라인·오프라인을 아우르며 투자 조언을 구했다. 카페 회원들과 부동산 정보를 나눴다. 소문난 강의를 찾아 듣기도 했다. 10년 전 주부였던 김 씨는 이제 어딜 가도 자신을 ‘부동산 임대업자’라고 소개한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