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단독·다세대주택에 둘러싸인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공감건축 제공
낡은 단독·다세대주택에 둘러싸인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공감건축 제공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골목. 서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단독·다세대주택 사이에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땅은 고작 62㎡인데 높이는 4층이다. 벽엔 크고 작은 창문 열댓개가 벌집처럼 뚫려있었다.

그 건물 바로 뒤편에도 비슷한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이 낯선 건물을 또 짓는다고 했다. 후암동에 들어설 26번째 ‘협소주택’이다. 인근 리치공인의 장세일 실장은 “지난달 나온 지 이틀 만에 거래된 땅에 협소주택이 올라가고 있다”며 “협소주택용 땅을 사기 위해 10여 명이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내부. 공감건축 제공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내부. 공감건축 제공
◆설계 의뢰 3배 늘어

서울 노후 단독·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 협소주택 바람이 불고 있다. 협소주택은 60㎡ 안팎 땅에 3~4층 높이로 지은 건축물이다. 대지 면적은 좁지만 용적률을 200% 가까이 올려 사용 공간을 넓힌 게 특징이다. 주로 도심 자투리땅을 활용해 짓는다.

일본이 원조인 협소주택은 우리나라에서 5~6년 전 모습을 보였다. 후암동에 협소주택을 지어 온 공감건축의 이용의 소장은 2012년부터 협소주택을 설계했다.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 일색인 도심에 색다른 주택을 제공하고 싶어서다. 그는 지난해 50채가 넘는 협소주택을 지었다. 설계한 작품 70%가 협소주택이다. 이 소장은 “4년 전에 비해 설계 의뢰가 3배 이상 늘었다”며 “젊은 건축가를 중심으로 협소주택을 지으려는 시도가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후암동 일대 중개소엔 협소주택을 짓기 위해 낡은 빌라나 단독주택을 사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매수세에 비해 협소주택을 지을만한 소규모 부지는 적어 거래는 드문 편이다. 후암동 L공인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협소주택이 하나둘 준공하면서 상담 전화가 1주일에 서너통씩 오고 1년 넘게 기다린 매수 대기자도 있다”며 “후암동에 최근 들어선 신축 주택 38가구 중 25가구가 협소주택”이라고 전했다.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내부. 공감건축 제공
서울 후암동의 한 협소주택 내부. 공감건축 제공
◆치솟는 아파트 값에 차라리

2014년 이후 서울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치솟자 협소주택 바람이 더 강해졌다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과 협소주택을 짓는 비용이 비슷해서다. 협소주택 건축비는 연면적 기준으로 3.3㎡당 600만~700만원. 대지면적 66㎡ 기준으로 서울 강북권에선 6억~7억원 선에 지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물론 입지에 따라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협소주택을 디자인하는 임병훈 홈스타일토토 소장은 “서울 강북 아파트를 살 돈이면 협소주택을 충분히 짓고 남는다”며 “전셋값마저 오르자 작은 땅을 사서 내 집을 짓겠다는 수요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같은 천편일률적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신세대가 늘어나는 것도 협소주택 인기의 원인이다. 협소주택을 지을 때 건축가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건축주와 함께 호흡한다. 거주자의 생활 습관, 신체적 특성 등을 고려해 공간을 구성한다. 구조가 비슷한 아파트나 빌라와 다른 모습이다. 현창용 Architects H2L 소장은 “젊은 세대는 획일적 공간에서 벗어나 개성 넘치는 주택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협소주택의 주 수요층이 30~40대”라고 전했다.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란 평가다. 일반적으로 협소주택 1층엔 상가를 들이는 경우가 많다. 주로 카페나 음식점, 꽃집 등이 들어선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임대수익과 주거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마장동 협소주택. 74㎡ 땅에 연면적 151㎡(지하 1층~지상 3층)로 이뤄졌다. 일부 공간은 임대용으로 설계됐다. Architects H2L 제공
서울 마장동 협소주택. 74㎡ 땅에 연면적 151㎡(지하 1층~지상 3층)로 이뤄졌다. 일부 공간은 임대용으로 설계됐다. Architects H2L 제공
72㎡ 땅에 3층 높이로 지어진 서울 마장동의 한 협소주택은 집주인 공간 외에 다른 가족을 맞이할 임대용 가구를 함께 설계했다. 1인 가구, 자녀 없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세를 놓고 있다. 합정동에 들어선 한 협소주택은 일부 공간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다.

◆건축법이 장애물

협소주택에 관심을 가지는 지자체와 시공사도 생기고 있다. 최근 엔디하임 더존하우징 코원하우스 등 이름있는 단독주택 시공업체가 협소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 시공부터 AS까지 제공한다. 더존하우징 관계자는 “비중은 적은 편이지만 협소주택 설계 의뢰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6일 ‘제1차 저층 주거지 재생 심포지엄’을 열고 소규모 주택 사업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공 전문가 조직을 꾸려 초기 단계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다.

71㎡ 땅에 5층(연면적 142㎡)으로 이뤄진 서울 석관동 협소주택. 1층은 임대료가 나올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로 구성됐다. 공감건축 제공
71㎡ 땅에 5층(연면적 142㎡)으로 이뤄진 서울 석관동 협소주택. 1층은 임대료가 나올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로 구성됐다. 공감건축 제공
그러나 장애물도 적지 않다. 도심에 자투리땅이 많지 않고 건축법도 까다롭다. 현행법상 인접 도로 폭이 4m 이상인 곳에서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옆 건물과는 50㎝ 이상 거리를 띄워야 한다. 이런 규정을 다 준수하다 보면 협소주택 연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용의 소장은 “건축법이 대형 건물을 중심으로 제정된 탓에 건물이 작든 크든 똑같은 규제를 적용한다”며 “대규모 개발과 소규모 개발 간의 차별화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조 일본선 맞벌이의 선호도 높아

협소주택의 원조 일본에선 ‘오픈 하우스’란 협소주택 전문 건설사의 급속한 성장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회사의 실적은 2013년 상장시점에 비해 4배나 성장했다. 주가도 6500엔대에서 최근 1만500엔대로 급등했다.

이 회사는 도쿄 시내 신축 맨션(한국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2017년 7000만엔(약 7억2000만원)을 돌파한 점에 주목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협소주택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도쿄에 집을 갖자’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 이유다.

이 회사의 타깃은 연봉 500만엔 정도의 평균 회사원. 지금까지 수도권 출퇴근권역에 단독주택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이들이다. 고객 중엔 맞벌이 부부도 많다. 이들은 출퇴근에 30분 이상 걸리는 걸 싫어한다. 낮에는 집에 없어 볕이 좀 안 들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정원도 필요없다. 아파트 층간 소음도 싫어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15년 기준으로 맞벌이 부부 비중이 60%를 넘는다”며 “이런 생활문화의 변화가 훈풍이 되어 줬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평균 4400만엔(약 4억5000만원) 정도에 협소주택을 공급한다. 이처럼 집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원재료인 땅을 저렴하게 매입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운 삼각형 등 부정형 토지도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어중간한 크기의 땅도 사서 3·4 등분했다. 협상을 통해 자재가격을 인하하는 건축비도 최대한 낮췄다. 이렇게 확보한 땅과 자재로 3층짜리 목조주택을 지어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이 부족해 수요에 다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