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최대의 도시재생사업인 ‘킹스크로스 프로젝트’는 계획 단계부터 민간 디벨로퍼 아젠트 등이 참여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킹스크로스 프로젝트’ 공식 웹사이트
영국 런던 최대의 도시재생사업인 ‘킹스크로스 프로젝트’는 계획 단계부터 민간 디벨로퍼 아젠트 등이 참여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킹스크로스 프로젝트’ 공식 웹사이트
2013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회는 도시 재생을 위해 ‘사우스레이크유니언 중심지구 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저층 공장과 창고, 낙후 주거지가 모인 사우스레이크유니언 일대에 새 건물이 들어설 경우 용적률과 높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골자였다. 사업성이 높아지자 그간 지역을 외면한 디벨로퍼들이 모여들었다. 지역 기반 디벨로퍼인 벌캔부동산은 복합건물 8동을 새로 지으며 재생사업을 주도했다.

새 건물엔 정보기술(IT),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등 고부가가치 기업이 입주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유통기업인 아마존은 본사 건물을 짓고 근처 대형 건물 여럿을 임차해 대규모 업무단지인 ‘아마존 캠퍼스’를 조성했다. 시애틀시는 중심지구 계획 변경 결정 덕분에 향후 20년간 2만2000여 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도시재생 현장에선 정부와 민간 주체가 협업하는 대형 사업이 많아지고 있다. 민간 기업이 단순히 자금을 투자하거나 시공을 맡는 수준이 아니다. 정부가 도시재생 밑그림을 짤 때부터 민간 기업이 기획에 참여하거나 아예 정부에 재생사업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정부는 개발 인센티브나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개발 활성화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디벨로퍼가 설계하고 정부는 규제 허물고… 도시 되살리는 민관 협업
민간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

칠레 ‘산티아고 구도심 재생사업’은 정부와 민간이 장기간 협력해 성과를 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세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산티아고 시정부와 개발공사는 인프라 확충 등 초기 사업을 이끌었다. 두 번째 단계엔 민간 디벨로퍼 인센티브 정책을 펼쳤다. 지역 내 재개발 가능 토지를 알려주고 프로젝트 설계 승인 절차 등을 간소화해줬다. 건축규제도 일부 완화했다. 민간 디벨로퍼들이 고밀도 주거 개발을 추진한 것이 세 번째 단계다. 이를 통해 정부가 당초 예상한 주택 가격보다 15~20% 낮은 가격에 공급이 이뤄졌다. 이곳은 인구 유입이 가장 활발한 곳으로 거듭났다.

2000년 시작된 영국 런던 최대 도시재생사업인 ‘킹스크로스 프로젝트’는 민간 주체가 계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민간 디벨로퍼 아젠트는 사업 부지인 킹스크로스역과 세인트판크라스역 사이 27만여㎡ 일대 토지 지분 50%를 소유하고 재생사업 계획부터 자산 관리까지 총괄한다. 1970년대부터 슬럼화돼 마약과 매춘 등 사회 문제가 심각했던 곳에 총 연면적 74만㎡ 규모의 복합건물 수십 채와 공원 학교 등을 짓는다. 준공을 앞둔 건물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런던예술대학을 유치한 데 이어 구글, 루이비통, 유니버설 뮤직 등 글로벌 기업들도 영국 지사를 킹스크로스 일대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인센티브로 개발 독려

일본은 새 건물이나 창의적인 도시재생사업안에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2014년 완공된 일본 도쿄 복합건물 ‘도라노몬 힐스’는 디벨로퍼가 도시재생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 먼저 제안한 경우다. 도쿄도청은 노후 목조건물 밀집지인 도라노몬 일대에 도로를 내고 싶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민간 디벨로퍼인 모리빌딩이 지하에 터널 도로를 내고 그 위에 초고층 빌딩을 짓자고 제안하자 도쿄도청이 받아들여 합작 사업에 나섰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지원받은 새 건물은 도쿄 최고 높이인 지상 52층, 255.5m다. 도라노몬 힐스 개장 1년 만에 일대 유동인구는 7%가량 늘었다.

마루노우치 일대의 도쿄중앙우체국 재개발사업(JP타워)도 비슷하다. 디벨로퍼인 미쓰비시지쇼가 기존 건물 일부를 보존해 저층 동을 조성하고, 오피스와 상업시설을 아우르는 지상 38층 규모의 고층 동을 새로 지었다. 도쿄도청은 옥상공원을 배치하는 등 창의적으로 설계한 점을 감안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민간과 공공 긴밀한 협조 필요

최창규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공은 금융 지원이나 제도 개선 등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간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성을 높여야 한다”며 “공공이 개발 인허가, 인프라 조성, 주민과 충돌 등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디벨로퍼도 개발 방식을 바꿀 것을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선진국 도시재생사업은 대부분 장기 임대수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렇다 보니 디벨로퍼는 지역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다. 반면 국내 디벨로퍼들은 대부분 건물을 짓고 매각·분양해 차익을 얻는 일회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천일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주체가 기획·시공, 관리·운영 등을 맡아 임대수익을 내고 수익 일부를 지역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도시재생사업 모델이 필요하다”며 “대형 건설사는 자본과 기술력을 투입하고 지역 중소기업은 맞춤형 재생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지역 단위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모델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선한결/김진수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