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속도전'… 정부 "빨리"·주민 "더 빨리"
서울 여의도, 송파 등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와 국토교통부가 안전진단 기준 강화 방안 시행일을 앞두고 피 말리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국토부가 ‘도시정비법 시행령 및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안전진단 개정안) 시행을 앞당기려고 행정예고 기간을 단축하자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안전진단 기관과의 용역계약 체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개정안 시행일 이전에 용역계약을 맺으면 안전진단 강화 기준을 피할 수 있어서다.

◆안전진단 규제 앞두고 ‘긴급 입찰’

영등포구청은 여의도동 광장아파트 3~11동, 신길동 우창, 우성2차아파트의 안전진단 용역업체 선정을 위해 지난 22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긴급 입찰 공고’를 냈다.
안전진단 '속도전'… 정부 "빨리"·주민 "더 빨리"
당초 이달 말까지 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내려 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2일 바로 공고를 올렸다. 긴급 공고는 일반 입찰공고보다 기간을 최대 7일 단축할 수 있다. 국토부의 안전진단 기준 강화 조치가 발표되기 전만 해도 대부분 재건축 단지는 일반공고 방식으로 안전진단 용역업체 선정에 나섰다. 6일 일반공고를 낸 양천구 신정동 수정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송파구청도 애초 아시아선수촌아파트 공고를 이달까지 내려 했으나 같은 이유로 시기를 앞당겨 21일 긴급 공고를 냈다. 20일엔 강동구 명일동 신동아아파트가 안전진단 평가 공고를 냈다. 구로구 구로동 구로주공아파트 입주민들도 이 소식을 접하고 23일 구로구청에 “긴급 입찰공고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사진)는 19일 용역업체 선정을 완료해 규제를 피했다.

행정안전부 예규인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에 따르면 용역비용이 5000만원 이상일 때 지자체는 본 입찰 공고 전 일정 기간(2~7일)의 사전 규격 공개를 해야 한다. 일부 지자체가 특정 업체에 유리한 규격과 조건을 반영해 수주를 독점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입찰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6년 5월 도입한 규정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긴급한 수요라고 여길 땐 예외를 적용받아 사전 규격 공개 기간을 건너뛸 수 있다.

◆국토부, 행정예고 기간 단축

국토부는 안전진단 개정안의 행정예고 기간을 2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로 잡았다. 20일로 예정돼 있는 기간을 10일로 절반 정도 단축했다. 행정절차법 46조에서는 20일 이상 예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특별한 사안이 있는 경우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행정 예고기간에 들어온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이르면 다음달 초나 늦어도 중순께 개정된 안전진단 기준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재건축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최대한 안전진단 강화 요건에 걸리는 단지를 많이 만들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이를 피한 단지들에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이 같은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비업체 한 관계자는 “안전진단 의뢰 여부를 업체 선정 및 계약으로 잡은 것도 아슬아슬하게 규정을 피해가는 단지를 줄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용역업체와의 계약 체결을 서두르는 재건축 단지들이 새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안전진단 개정안 시행일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주민 민원이 쏟아지고 있어 구청에서는 최대한 안전진단 용역 절차를 지원해줄 수밖에 없다”며 “다음달 초에는 안전진단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노원구 월계동 월계시영아파트 3만4275가구 주민들은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절차에 반발하는 공동 투쟁을 벌일 방침이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