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파세요" 전화에 시달리는 집주인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3일에 한 번꼴로 중개업소 전화를 받는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전용 84㎡ 아파트를 팔라는 요청에 시달리고 있는 것. A씨는 “실거주 목적이라 매도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문자, 전화 등으로 연락이 계속 온다”며 “단지 내 부동산 중개업소는 물론 인근 중개업소 등까지 10곳 이상이 연락을 해오는 통에 진저리가 난다”고 털어놨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매도자 우위의 아파트 시장이 지속되자 중개업소들이 직접 매물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집값 급등으로 매물이 확 줄어든 지역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B씨는 “지난해 초 투자용으로 아파트를 하나 매수했고, 자금 사정에 맞춰 생각하는 매도 시점이 있다”며 “그런데도 자꾸 전화를 걸어 매수 대기자를 연결시켜주겠다고 해 불편하다”고 했다.

경기 판교, 서울 성동구 등에서도 중개업소들은 매수자를 유혹하기 위해 매도자가 동의하지도 않은 물건을 집주인이 말한 호가보다 5000만원가량 저렴하게 내놓기도 한다. 수요자가 이를 보고 전화하면 “매도자가 변심했다”며 “더 좋은 다른 매물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식으로 매수자를 붙들어 놓는다.

중개업소들은 집주인에게 매도가 하한선을 강요하기도 한다. 거래가 줄어들며 수입에 타격이 생긴 까닭에 집주인을 설득하기도 한다. 왕십리 센트라스에 사는 한 주민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 같으니 팔라는 식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원하는 가격을 말해도 포털 사이트엔 가격을 낮춰 게재하는 등 재산권 침해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인근 150여 개 부동산 중개업소의 과열된 영업 경쟁으로 매일 전화에 시달린다는 설명이다.

판교 봇들마을 1·2·4단지 주민들도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니 미끼 매물, 저가 매물만 포털 사이트에 수두룩하게 올라와 있다”며 “가격 담합은 소유주들이 아니라 거래가 힘들어진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집주인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