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은 기자] # 5살, 6살 연년생 두 아들을 둔 A씨는 요즘 층간소음 때문에 고민이 많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랫집 이웃과 갈등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걱정이 없는 1층으로 이사 가려니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다. 위험하기도 하고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게 꺼려진다는 게 이유다.

# 4살, 6살 자녀를 둔 주부 B씨는 최근 15층에서 필로티가 있는 1층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의 실내 활동이 많아지면서 층간소음 분쟁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최근 1층으로 이사 오고부터는 아이가 집에서 뛰고 공놀이를 해도 걱정이 없다”며 만족해 했다.

일반적으로 1층 가구는 아파트 전체 층 가운데 선호도가 가장 낮다. 층간소음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안전 문제, 사생활 침해 등이 우려되는 탓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보완한 설계 방식이 도입되고 있어 수요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필로티’ 설계다.

신규 아파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수요자들에게는 ‘필로티’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수도 있다. 사전적 의미의 ‘필로티’는 근대건축에서 건물 상층을 지탱하는 독립 기둥을 뜻한다. 건물 1층을 벽 없이 기둥만으로 한 층이 되도록 설계하는 구조다.
필로티 설계가 적용된 근대 건축물 '빌라 사부아'. 사진=위키피디아
필로티 설계가 적용된 근대 건축물 '빌라 사부아'. 사진=위키피디아
근대 건축의 대표로 꼽히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그의 대표작에 이런 설계를 활발히 도입하면서 유행 보급됐다. 빌라 사부아, 스위스 학생회관 등이 건물을 대지에서 공중에 띄워 올린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는 자유로운 평면, 옥상정원 등과 함께 필로티를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하나로 강조하기도 했다.

필로티 설계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7년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힐탑아파트를 공급하면서 1층에 필로티를 적용했다. 필로티가 적용된 1층 입주민들은 실제로 2~3층의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다.

기존 1층과 비교해 개방감과 일조량이 극대화 되며 낮은 채광으로 인한 추위와 습함, 취약한 사생활 보호 등의 문제도 보완된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층간소음 분쟁으로부터도 자유롭다. 1층에 벽이 없기 때문에 단지 내 동선이 간결해진다는 점도 장점 중 하나다.
필로티 설계가 적용된 '경희궁자이' 전경. GS건설 제공
필로티 설계가 적용된 '경희궁자이' 전경. GS건설 제공
2014년 정부가 이 공간에 교육·휴게시설·독서실·회의실 등 주민공동시설 도입을 허용하면서부터는 필로티 설계가 더욱 급증하고 있다. 주로 주차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과거와 비교해 활용도가 훨씬 개선됐다.

천안 청수지구 ‘천안 청수지구 우미린(2010년 8월 입주)’은 단지 중앙에 위치한 4개동의 필로티 공간에 주민 공동시설을 들였다. 어린이 실내놀이터를 비롯해 한옥 사랑방, 유럽풍 테라스카페 등이 마련돼 입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GS건설 ‘경희궁자이’도 필로티를 특화한 단지로 꼽힌다. ‘경희궁’이라는 단지명에 맞춰 필로티 공간에 한국 전통미를 살린 대청마루를 설치했다. 외부 조경을 감상하면서 주민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필로티 1층 가구는 아파트값 상승률도 로열층 못지않다. 국토교통부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용인 수지구 ‘동천자이(2018년 8월 입주예정)’에 필로티가 도입된 전용 84㎡ 1층은 지난달 5억5065만원에 거래됐다. 분양가 5억1490만원 대비 6.94% 오른 가격이다. 같은 면적 26층은 작년 11월 5억5590만원에 거래돼 분양가(5억4700만원) 대비 상승폭이 1.63%에 그쳤다.

롯데건설이 서울 강북구 미아4구역에서 공급한 ‘꿈의숲 롯데캐슬(2017년 2월 입주)’도 필로티가 도입된 단지다. 이 아파트의 1층은 지난달 분양가 4억4400만원보다 6.36% 오른 4억7233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면적 8층은 4억8833만원에 거래가 이뤄져 분양가 4억6700만 대비 4.57% 상승하는 데 머물렀다.

분양업계 전문가는 “필로티 설계는 기존 저층부 아파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데다 최근 층간소음 최소화, 단지 내 조경 조망 등 장점이 부각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며 “저층 가구인 만큼 분양가는 다른 층과 비교해 저렴하지만 희소가치가 높고 수요가 꾸준해 이후 가격은 상층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소은 한경닷컴 기자 luckys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