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15억5000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서울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는 최근 2억원 이상 호가가 떨어져도 거래가 멈췄다. 한경DB
지난 10월 중순 15억5000만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서울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는 최근 2억원 이상 호가가 떨어져도 거래가 멈췄다. 한경DB
“한 달 새 호가가 5000만~1억원까지 떨어져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단기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져 부동산시장 전체가 침체 국면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서울 개포동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정부가 서울 등 전국 37개 지역의 전매 제한 및 청약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11·3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가계부채 대책 후속 방안 발표, ‘최순실 사태’ 확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후 금리 상승까지 겹치며 부동산시장은 빠르게 냉각되는 분위기다.

‘11·3 대책’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는 호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거래가 멈췄다. 경기 하남 미사, 화성 동탄2신도시 등 투자 수요가 많은 수도권 택지지구에서도 분양권 웃돈(프리미엄)이 수천만원씩 내려가며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애초 대책은 신규 분양권 시장을 겨냥했지만 기존 아파트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주택시장 전반이 위축되는 모습이다.

◆강남 4구 거래 ‘뚝’, 가격↓

반포 아파트 호가 1억 낮춰 불러도…"더 떨어지면 얘기합시다"
올해 서울 재건축 열풍의 중심지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4단지는 이달 들어 평균 3000만~4000만원씩 떨어졌지만 거래는 뜸하다. 주공1단지 전용 42㎡(84㎡ 신축 기준)는 매도 호가가 최근 9억7000만원까지 내려갔다. 이 단지는 올초부터 가격이 급등해 10월 초 10억5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부동산 규제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 달 반 새 8000만원가량 내렸다. 채은희 개포부동산 대표는 “조합원 입주권은 중도금 없이 잔금을 치러야 해서 많은 현금이 필요한데 9억원이 넘는 전용 35㎡ 아파트를 살까 말까 고민하던 매수자가 8억5000만원까지 떨어지자 11월30일 계약했다”며 “가격 회복을 기다리는 매도 희망자가 있지만 매수 대기자가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 1단지에는 한 달 만에 2억원가량 떨어진 매물이 등장했다. 지난 10월 26억5000만원에 거래된 전용 106㎡는 25억원에 내놔도 팔리지 않고 있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한 달 전 15억~16억원 하던 전용 72㎡는 14억원대에 물건이 나와서 손님에게 휴대폰 문자를 돌렸지만 ‘더 떨어지면 다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 전했다.

올해 단기간 가장 급등한 곳으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도 전용 76㎡가 지난달 13억3000만원에 한 건 매매된 뒤 거래가 ‘올스톱’ 상태다. 이 주택형은 10월 중순 15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내년 일반분양을 앞둔 강동구 고덕주공 ·3·5·6·7단지도 평균 2000만~3000만원가량 하락했다.

◆수도권 분양권 시장까지 한파

반포 아파트 호가 1억 낮춰 불러도…"더 떨어지면 얘기합시다"
아파트 분양권 시장도 위축되고 있다. 기존 분양권은 전매 제한 강화를 비켜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주택시장 전반이 움츠러들면서 분양권 거래도 주춤하다. 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날까지 신고된 지난달 서울 분양권(입주권 제외) 거래량은 430건이다. 하루평균 14.3건이다. 10월 604건(하루평균 19.4건)과 비교하면 28% 줄었다. 개포동 ‘래미안 블레스티지’(개포주공 2단지)는 10월 전매 제한 기간이 풀렸을 당시 프리미엄이 최고 2억원에 달했지만 대책이 나온 이후 1억~1억5000만원대(호가)로 내려갔다. 한달 전 5000만원까지 붙었던 ‘고덕 그라시움’(고덕주공 2단지) 웃돈도 1000만~3000만원대로 떨어졌다.

수도권 택지지구 주택시장도 비슷한 양상이다.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와 하남 미사, 위례신도시 등에서도 분양권 거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하남시 ‘미사강변 2차 푸르지오’ 아파트(1695가구) 전용 84㎡는 10월 24건이 거래됐으나 지난달엔 6건에 그쳤다. 위례신도시 ‘위례자이’도 10월에는 분양권 매매가 13건 이뤄졌지만 지난달엔 5건으로 줄었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웃돈이 2억8000만원까지 붙었던 이 아파트 전용 102㎡ 중고층은 최근 2억300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임성환 알리안츠생명보험 WM센터 부장은 “11·3 대책과 가계부채 관리방안 등이 연달아 나오면서 수요자들이 정부 규제가 본격화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국내 정세 불안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