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억제 정책의 불똥이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튀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5월 이후 공급한 공공분양아파트 6개 단지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해 줄 금융회사를 구하지 못해 당첨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저소득자, 무주택자 등 주거복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공급되는 공공분양주택에까지 집단대출을 해 주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들이 집단대출을 사실상 중단함에 따라 분양을 준비 중인 민간 건설사들도 중도금 대출처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중도금 대출 중단] '가계부채 옥죄기'에 무주택 실수요자만 '낭패'
◆공공주택 6곳 집단대출 중단

14일 LH에 따르면 전국에서 6개 단지 5528가구가 집단대출을 못 받을 위기에 처했다. LH는 지난 13일 경기 시흥 ‘시흥은계 B2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면서 “금융권 중도금 집단대출 규제로 인해 현재 중도금 집단대출은 불가하며, 추후 중도금 집단대출 은행과 관련해서는 별도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달 수도권에서 분양하는 경기 수원 호매실지구 B2블록, 경기 하남 감일지구 B7블록 등 두 곳도 입주자 모집공고 등을 통해 중도금 집단대출이 어렵다고 알리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 공급한 부산 명지지구 B1블록, 수원 호매실지구 A7블록, 7월 내놓은 동탄2 A44블록도 오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중도금 납부 시기가 다가오지만 집단대출을 취급할 은행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들 3개 단지에선 금리 입찰을 신청한 은행이 한 곳도 없었다. LH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없이 금리 입찰 방식으로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을 협약 은행으로 선정해 왔다. 작년만 해도 은행 두세 곳이 입찰해 참여해 경쟁했지만 지난해 말 이후 한 곳으로 줄어드는 등 상황이 나빠졌다. 특히 오는 12월 1차 중도금 납부 시기가 도래하는 호매실지구 A7블록에 대해선 모두 네 차례 입찰 안내를 띄웠지만 지방은행을 포함해 한 군데도 나서지 않았다.

LH는 이달 공고하는 사업지부터 통상 분양가의 30~50%인 중도금 규모를 10~30%로 줄이고, 계약 후 3~6개월인 중도금 1차 납부 시기를 8개월 이후로 늘리는 등 납부 조건을 변경해 대응하고 있다. 14일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박상우 LH 사장은 “중도금 납부 시기 등을 조정해 무주택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사업장도 초비상

민간 건설사도 비상이 걸렸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난달 수도권에서 공급한 아파트는 분양이 거의 100% 됐음에도 1금융권에서 취급을 해 주지 않아 2금융권으로 가서 어렵게 승인을 얻어냈다”며 “예전엔 분양률이 50%만 돼도 은행에서 해줬지만 요즘엔 은행 내부 규정에 의해 아예 취급을 안 한다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임원은 “은행이 집단대출을 중단하면 계약자들은 직접 중도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며 “가수요자들이 사라지면 분양시장이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잇따라 규제책을 내놓으면서 금융권에서도 집단대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257조3000억원에 달한다. 연말에는 13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