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증권회사가 택지지구 내 공동주택용지가 추첨제인 것을 이용해 사실상 ‘땅 장사’를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견 건설업체들이 수십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택지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모방해 교보증권이 택지 확보에 나섰다. 당첨만 되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차익을 볼 수 있다 보니 건설회사뿐만 아니라 금융회사까지 택지 확보전에 가담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 같은 행위의 불법성 여부를 확인 중이다.
페이퍼컴퍼니로 공공택지 사들인 증권사
◆증권사도 ‘로또’ 택지 확보전 가담

8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교보증권이 30개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택지지구에서 공급하는 공동주택용지에 집중 청약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증권 페이퍼컴퍼니 중 한 곳으로 추정되는 드림파크개발은 지난 5월 인천 청라국제도시 공동주택용지 A30블록 당첨자로 선정됐다. 경쟁률은 610 대 1에 달했다. 공급가격은 1145억원으로, 전용면적 60~85㎡ 공동주택 870여가구를 지을 수 있는 땅이었다.

원래 서울 여의도 교보증권빌딩 19층에 주소지를 두고 있던 드림파크개발은 이 땅에 대한 매수 계약 체결일(5월27일) 직후인 지난 5월30일 주소지를 서울 잠원동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드림스테이지개발은 충남 천안의 한 공장 이전 부지를 사들였다. 천안시에 따르면 수도권지하철 1호선 두정역 인근 희성폴리머(옛 한화폴리드리머) 천안2공장 이전 부지인 두정동 28 일대(5만여㎡) 시행사로 드림스테이지개발이 선정됐다. 여기는 제2종 일반주거지로 아파트가 들어설 곳이다. 드림스테이지개발 역시 여의도 교보증권빌딩에 주소를 두고 있다가 지난달 서울 논현동으로 옮겼다.

이 두 곳 외에 같은 곳에 주소지를 두고 있던 그랜드와일레아·뉴그린그로스·디벨롭피아·마우이개발·스타로드빌·에이블콘스 등 28개 페이퍼컴퍼니는 지난달 11일부로 법인 등기를 청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30개 업체는 지난해 3~10월 설립됐고 당시엔 주소지가 교보증권빌딩 19층으로 모두 같았다.

마찬가지로 주소지를 교보증권빌딩 19층에 두고 있는 올뉴하우스개발은 지난해 10월 경기 하남 위례신도시 내 공동주택용지 A3-1블록을 샀다. 당시 경쟁률은 325 대 1에 달했다. 서울 송파·경기 하남 및 성남에 걸쳐 있어 수도권 접근성이 좋은 위례신도시는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택지지구 청약에 나선 곳이다.

◆금감원 “택지 매입 확인”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 증권사들이 시행(개발)사가 갖고 온 건설업체 관련 기업어음(CP)을 집중 매입한 뒤 할인해 파는 방법으로 부동산시장에 간접적으로 진출한 적이 있지만 이같이 노골적으로 개발 업무에 나선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페이퍼컴퍼니의 이 같은 토지 매입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향후 전매 등과 연결되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르면 택지를 공급받은 자는 소유권 이전등기(잔금을 치를 때) 전까지 택지를 전매할 수 없다. 그러나 공급가 이하로 되파는 경우,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출자한 특수목적회사에 전매하는 경우 등 다수 예외를 둬 전매제한 조치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특례를 악용해 다수의 페이퍼컴퍼니가 택지를 선점한 뒤 모회사 또는 계열회사에 전매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계약 후 2년간 전매할 수 없도록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을 고쳤다. 그러나 예외조항은 손보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추첨 외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하면 토지 매입비용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며 “주택 건설 실적에 따라 청약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교보증권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택지를 매입한 것이 확인됐다”며 “관련 법(자본시장법 등) 위반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