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10만원가량 하락, 공실률 10~30%…업자들 "앞으로가 더 문제"

국내 조선업계가 최악의 불황기에 접어자 한때 대형 조선소 주변에서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원룸 업계가 혹한기를 맞았다.

거제와 울산 등 대형 조선소 인근에서 협력업체와 '물량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중·단기 임대를 하던 원룸은 조선 호황 때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조선 불황의 그늘이 본격적으로 드리워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위기는 급변했다.

높은 보증금·월세에도 방 구하기가 힘들었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빈 방이 늘어나고 월세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임대업자들과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고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 월세 추락, 빈 방도 급증…일부선 공사 중단도
지난 26일 오후 거제시 사등면 사근마을 한 원룸촌. 거제시 중심가에서 차량으로 10여분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는 70가구의 원룸이 들어서 있다.

현재 60여 가구가 임대돼 10% 정도는 공실 상태다.

임대료도 하락 추세다.

지난해 보증금 500만원에 월 40만~45만원이었던 월세는 35만~40만원으로 10% 이상 떨어졌다.

보증금도 100만원 정도 하락했다.

원룸촌 앞쪽에 기세좋게 신축중이던 원룸 공사는 중단됐다.

건축주가 자금난 때문에 공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거제 원룸 시장의 미래를 알려주는 듯했다.

원룸촌 관리인은 "월세와 보증금이 하락 추세이고 공실률도 높아지는 분위기"라며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인근 삼성중공업 및 사내협력사 직원들이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원룸촌을 떠나든지 월세를 내려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월세가 30만원 밑으로 떨어질 경우 경영에 큰 압박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런 상황은 거제지역 다른 원룸촌도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과 인접한 장평동 장평종합상가 뒤편이나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동, 아주동 등 원룸촌들의 경우 전체적으로 공실률 상승, 월세 하락의 이중고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거제시 부동산업계는 중심지 원룸 공실률을 7~8%로 파악했다.

그렇지만 오비·한내 지역 등 외곽은 20%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시가 파악한 3월말 기준 원룸 공실률은 6.6%로 계속 상승 추세다.

거제의 원룸 경기는 2014년 추석 이후로 줄곧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분석이다.

2014년 이전까지는 신규 원룸의 경우 공실률이 0%에 가까웠다.

월세도 보증금 1천만원에 40만원에서 45만원선, 최고 50만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공실률이 평균 10% 안팎까지 치솟았고 월세는 5만원~10만원 하락했다.

거제시부동산협회 손진일(52) 회장은 "조선업이 회복되지 않는 한 거제시 원룸 시장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며 "공실률 상승·월세 하락의 이중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도 "조선업 불황이 끝나야 원룸 등 전반적인 시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며 "조선업 호황 때 지나치게 많은 원룸 등을 건축한 게 부작용을 낳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원룸 공실률이 아직은 전국 기준으로 볼 때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면 공실률이 급격히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는 이런 원룸 공급과잉에 따른 부작용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시는 지난해 7월 다가구주택이 공급 과잉 상태라며 시민들에게 공개 경고문을 보냈다.

당시 시는 "조선업계 불황이 장기화하면 직원들의 임대 여력이 감소하게 돼 전체적으로 다가구주택 임대 시장이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며 "원룸 등 신축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말 기준 거제시의 다가구주택은 3천356채 2만8천여 가구로 최근 수년 사이 매년 10% 안팎으로 증가세를 보여왔다.

통영시 원룸 시장도 조선업 불황 여파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룸 월세가 거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통영으로 출퇴근하는 거제 조선소 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조선업 불황 여파가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공실률 상승과 월세 하락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점차 옮아가고 있다.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의 한 원룸 소유주는 "아직까지는 월세를 내려달라는 요구는 없지만 조선업 불황이 이어진다면 월세를 깎아달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 울산서도 갑자기 빈방 늘고 월세 추락
26일 오후 울산시 동구 방어동의 원룸촌.
이곳은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와 가까워 협력업체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불황으로 해양사업부 일감이 줄면서 근로자들도 줄고, 덩달아 원룸의 수요도 점점 줄고 있다.

빽빽한 원룸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즉시 입주 가능'이라는 안내 전단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원룸 주인은 "아직까지 빈 방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한 건물에 1∼2개 정도가 비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2∼3년간 빈 방을 찾기 힘들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라며 "최근 갑자기 빈 방이 생기기 시작하고, 월세가 떨어지니 원룸 주인 입장에서는 상황을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어동 지역의 원룸 임대료는 지난해에 비해 대략 10만원 정도 감소했다.

지난해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50만원 정도였던 월세가 최근 보증금 300만원에 월 38만∼4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월세 하락은 특히 올해 4월부터 가속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월세 하락세가 두드러졌다"며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 더 많은 근로자들이 이곳을 떠날 텐데, 월세가 더 낮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동구에는 대략 3천 가구의 원룸이 있다.

동구 전체 원룸의 공실률은 15∼20%, 이 중 방어동의 공실률은 30%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룸 건물 하나당 6∼8개의 원룸이 있다고 가정하면 동구 전체는 건물당 1개의 빈 방이, 방어동에는 건물당 2개의 빈 방이 있는 셈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한때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에서 일할 근로자들이 모여들면서 방어동에 원룸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그러나 최근 일감이 없어 근로자들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빈 방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울산연합뉴스) 이경욱 김용태 기자 kyung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