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헤란로 곳곳에 ‘사무실 임대’ 간판 > 주요 기업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서울 강남지역을 떠나면서 강남 빌딩 공실이 크게 늘어나자 공식 임대료를 낮춘 빌딩까지 등장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빌딩.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 테헤란로 곳곳에 ‘사무실 임대’ 간판 > 주요 기업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서울 강남지역을 떠나면서 강남 빌딩 공실이 크게 늘어나자 공식 임대료를 낮춘 빌딩까지 등장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빌딩.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울 강남역(지하철 2호선·신분당선) 7·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D빌딩 벽면엔 ‘임대료 인하’라는 글귀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다. 3.3㎡당 보증금은 45만원, 월 임대료는 기존보다 20% 내린 4만5000원을 내걸었다. D빌딩은 강남역 사거리 초역세권에 있는 데다 건물 관리가 비교적 잘 돼 있는 덕분에 프라임급(지역 랜드마크 건축물, 상위 10%) 다음 단계인 A급 업무용 빌딩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식 임대료를 내리는 내용의 광고를 내건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빌딩.
공식 임대료를 내리는 내용의 광고를 내건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빌딩.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렌트프리’(일정기간 임대료를 공짜로 해주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빌딩 임대료 자체를 낮추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기 위축 장기화와 기업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강남에 사무실을 둔 기업들이 임대료가 싼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공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D빌딩처럼 선호도 높은 빌딩에서 임대료를 인하한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라는 게 빌딩업계 설명이다.

3년 새 공실률 2배로 뛰어

강남 빌딩 10%가 빈 사무실…'두 달 공짜'도 안 통해 임대료 20%↓
부동산관리회사인 젠스타에 따르면 2012년 평균 3.9%이던 강남지역 A급 오피스빌딩(상위 10~30%) 공실률은 해마다 뛰어 지난해 평균 9.4%로 높아졌다.

빌딩 소유주들은 그동안 공실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두 달 임차비용을 무료로 제공하는 렌트프리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 일부 할인을 하더라도 공식 임대료는 좀처럼 낮추지 않았다. 송기욱 젠스타 선임연구원은 “공식 임대료를 내리는 건 건물 매매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동안 빌딩업계에선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렌트프리만으로는 더이상 공실률 상승을 막을 수 없다고 건물주들이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게 빌딩 컨설팅업계의 설명이다. 이런 모습은 자산운용사와 외국계 회사들이 보유한 프라임급 빌딩보다는 개인 건물주가 직접 관리하는 대형 또는 중소형 빌딩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송 연구원은 “건물주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작년 4분기 강남지역 A급 빌딩 공실률은 연평균보다 낮은 8.8%를 기록했으며 평균 임대료도 5분기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들 빠져나가는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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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높아진 건 무엇보다 기업 구조조정 및 비용절감 방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적지 않은 기업이 값싼 지역을 찾아 강남을 떠나거나 사무실 규모를 줄이고 있다. 강남역 인근 삼성 서초사옥 중층부에 입주해 있던 삼성의 화학 관련 계열사들은 롯데그룹에 인수되면서 지난해 사무실을 비웠다.

삼성 서초사옥과 인근 A급 빌딩에 입주해 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오는 3월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로 이전한다. 쿠팡은 지난해 선릉역 인근 빌딩에서 금천구 독산동으로 이사했다. 사모펀드에 매각된 홈플러스는 강남 역삼동에 있는 본사를 오는 4월 가양 인근 강서점으로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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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들도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잇따라 옮겨가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작년 3월 삼성동 본사를 중구 센터원빌딩으로 옮겼다. 재작년에는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이 강남을 떠났다.

기업들이 잇따라 강남을 떠나는 가운데 지난해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잠실 종합운동장역을 잇는 강남 봉은사로를 중심으로 신규 빌딩이 늘어난 것도 강남 공실률 상승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강남을 떠나는 기업들 상당수는 A급 오피스빌딩을 장기간 임차해 써왔다. 프라임급이나 B·C급 빌딩에 비해 공실 타격이 상대적으로 큰 이유다. 전문가들은 프라임급에 비해 물량이 많은 A급 빌딩 소유주들이 공실을 줄이기 위해 한정된 우량 임차인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진수 글로벌PMC 상무는 “임차인들이 요즘 같은 지역이면 임대료가 싼 B급 빌딩으로 옮긴다”며 “또 프라임급 빌딩은 지역 상징성 때문에 공실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프라임급에 비해 임대료가 크게 낮지 않은 A급 빌딩은 어중간한 상태”라고 말했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