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전세·매매가 역전’ 사례가 서울에서 처음 나왔다. 전세가율이 90%를 웃도는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전셋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전세·매매가 역전’ 사례가 서울에서 처음 나왔다. 전세가율이 90%를 웃도는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85㎡(이하 전용면적) 미만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평균 90%를 웃돈다.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59㎡ 이하 평형은 전세와 매매 시세가 비슷한 집이 적지 않다.

길음역 인근 대송공인의 최모 중개사(58)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둔 세입자 일부가 집 구입에 나서면서 집값은 2년 전보다 7000만원가량 올랐지만 저금리로 전세 물량이 크게 줄면서 전셋값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억5000만원 넘게 뛰었다”고 말했다.

○역세권 소형 주택 전셋값 급등

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을 이용해 광화문 등 서울 도심권으로 출퇴근하기 쉬운 길음뉴타운은 ‘강북 전세1번지’로 꼽힌다. 길음초등·중학교가 가까운 ‘길음뉴타운 2단지 푸르지오’ 84㎡는 지난달 4억1500만원에 거래됐는데 같은 달 전세거래 신고가격은 4억원이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차이가 1500만원으로 전세가율이 96.3%에 달했다.

미아초등학교가 단지 앞에 있는 ‘길음 동부센트레빌’ 59㎡와 84㎡의 매매와 전세가격 차이는 각각 2000만원과 2200만원에 그친다.
종암 래미안 전세 3억5000만원 > 매매 3억1000만원
성북구 전세난은 이웃 강북구로 옮겨붙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강북구는 지난달 전셋값이 전달보다 1.17% 올라 전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북구 미아동 ‘래미안 트리베라 1·2차’는 한 달 새 전셋값이 3000만원 뛰었다.

여의도와 강남권을 잇는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과 양천향교역, 가양역, 증미역, 등촌역, 염창역 등이 지나는 강서구 평균 전세가율도 평균 77.8%로 높은 편이다. 급행정차역인 가양역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양강나루 2차 현대’ 84㎡의 지난달 전세가격은 3억5000만원으로 같은 달 매매가 4억2000만원의 83%에 이른다.

동작구(전세가율 77.4%)는 재건축 재개발 이주 수요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지하철 4·7호선 환승역인 이수역 인근 사당1구역은 이주가 거의 끝났고 이웃 2구역도 이주를 진행 중이다. 이수역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사당동 ‘사당우성2단지’ 84㎡는 지난달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한 전세가율이 88.2%에 달했다.

○전세·월세 수요 불일치

평균 아파트값이 5억여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에서까지 전세·매매가격 역전 단지가 등장한 것은 저금리 여파로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세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길음뉴타운 등 역세권 소형 아파트 단지에선 보증금 1억~3억원에 월세 50만~100만원 수준의 보증부 월세(반전세) 매물이 늘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내 집을 마련하거나 보증금을 높여서라도 전세로 눌러앉고 있다고 인근 중개업소들은 설명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보증금이 유지되는 전세는 세입자에게 금리 0%짜리 예금과 같다”며 “전세대출 금리도 낮아 저금리일수록 세입자의 전세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지역이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나 위례와 광교 등 수도권 신도시에 비해 향후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낮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박상언 유엔알 컨설팅 대표는 “전세난 속에 올 들어 서울 강북권 아파트값이 소폭 올랐지만 강남 3구 재건축 대상 아파트와 신도시 분양권 상승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중산층 수요가 전세로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