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100만원 받는 연봉 5000만원 집주인, 稅부담 되레 줄어
서울 대치동에 사는 윤모씨(66)는 반포동에 갖고 있는 아파트(전용면적 84㎡)의 임대 방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계속 월세를 놓아야 할지, 전세로 돌려야 할지, 아니면 팔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4년 전 은퇴한 윤씨는 연금과 월세 100만원으로 생활해왔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월세 소득 과세 강화를 담은 ‘주택 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월세 임대를 지속할 경우 그동안 내지 않던 세금을 100만원 정도 새로 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이영진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이번 대책이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전면적 세금 부과의 성격이 있는 만큼 그동안 세금을 안냈던 집주인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은퇴 이후 월세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층 등을 배려해 일부 과세 기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 부과보다 소득 노출이 더 걱정

월세 100만원 받는 연봉 5000만원 집주인, 稅부담 되레 줄어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집을 2채 이상 보유한 136만5000명(2012년 통계청 조사) 다주택자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집주인 동의 없이 월세 소득공제 신청이 가능해진 데다 국세청이 400만건에 달하는 ‘임대차 확정일자 자료’를 확보하면서 월세 소득은 비과세라는 ‘세금 안전지대 고정관념’이 깨지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다주택자의 94% 정도는 임대소득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2012년 기준 국세청에 임대소득을 자진 신고한 집주인은 전체 다주택자의 6%인 8만3000명에 그쳤다. ‘주택 임대차 시장 선진화 방안’ 시행으로 집주인들이 당황하는 이유다. 월세 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보다 현재 얻고 있는 임대소득 내용 전반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월세가 100만원을 넘는 고가 월세 주택이 많은 서울 반포와 잠실 등 강남권 중개업소와 은행 PB센터 등에는 최근 임대소득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반포동 A공인의 최모 대표는 “보증금 1억원, 월세 250만원인 보증부 월세로 내놓았던 반포자이 전용 84㎡ 집주인이 임대소득 노출 걱정 때문에 전세금 7억원의 전셋집으로 바꿔 세입자를 구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세금만큼 월세를 더 받겠다는 집주인도 상당수다. 임대소득세발(發) 월셋값 인상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잠실동에서 전용 82㎡형 아파트를 보증금 1억원·월세 150만원에 임대하고 있는 최모씨(59)는 “임대소득세를 월세에 덧붙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소득 없는 은퇴자 집주인만 부담 커져

모든 집주인이 ‘세금 폭탄’을 맞는 것은 아니다. 이번 조치로 임대소득세 부담이 커진 사람은 월세 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이다. 예컨대 월세 100만원으로 생활해온 은퇴 임대소득자는 지금까지는 소득세 신고를 안했으면 세금을 아예 안냈다. 신고를 했더라도 연간 세금이 39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득세법이 개정되면 한 달치 월세와 맞먹는 92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다만 고령층 은퇴자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세금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있다.

반면 임대소득 외에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등 다른 소득이 있을 경우 집주인의 세금 부담은 종전보다 오히려 줄어든다. 연소득 1억원에 월세 100만원을 받고 있는 2주택자는 현재 158만원(세율 24%)을 내야 하지만 분리과세(세율 14%) 적용으로 세금이 92만원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보증부 월세)은 80만원 수준(연간 960만원)이어서 분리과세에 해당하는 연간 2000만원 이하라는 점 때문에 강남권의 일부 고가 월세 주택을 제외하고는 실제 세금 부담액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종합소득세 대상으로 세금이 무거운 3주택자 이상은 전체 다주택자의 15%가량인 21만가구 정도다. 김경재 신한금융투자 세무팀장은 “그동안 월세 세금을 내지 않은 일부 집주인은 부담이 클 것”이라며 “월세 소득세 면제 기준에 맞춰 주택 임대 방식을 조율하거나 월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소득은 “월세가 전세보다 유리”

하지만 세금을 내더라도 실제 임대소득은 월세가 전세보다 유리할 것으로 분석됐다. 월세 소득이 100만원인 은퇴자가 세금 부담이 싫어서 전세로 돌릴 경우 전세 보증금은 1억6625만원(월세 전환율 6%)이다. 이 보증금을 정기예금(금리 연 2.63%)에 넣는다고 가정할 때 세전 이자 437만원에서 이자소득세(세율 15.4%) 67만원을 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370만원이다. 이는 월세 소득세를 내고 난 뒤 남은 돈 1108만원(1200만원-92만원)의 3분의 1에 그친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팀장은 “임대소득세 납부로 건강보험료 등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도 “수익률은 월세가 전세보다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김보형/김진수/주용석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