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2009년 약 6억달러에 수주한 주롱 유류비축기지 1단계 현장. 지상에 있는 정유 시설과 주롱섬 인근 반얀만 200m 해저에 930만배럴을 저장하는 유류비축기지와 유조선 접안·운영시설을 건설하는 공사다. 주롱=김태철 기자
현대건설이 2009년 약 6억달러에 수주한 주롱 유류비축기지 1단계 현장. 지상에 있는 정유 시설과 주롱섬 인근 반얀만 200m 해저에 930만배럴을 저장하는 유류비축기지와 유조선 접안·운영시설을 건설하는 공사다. 주롱=김태철 기자
연초부터 해외건설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 업체 간 과당 경쟁과 저가수주로 인한 ‘적자 증가’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와 정부는 올해를 ‘해외건설 체질개선’의 원년으로 삼고 본격적인 시스템 개혁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통해 건설업계의 숙원인 ‘연 1000억달러 수주시대’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은 수출 효자상품이다. 세계 6대 해외건설 강국인 한국의 해외 수주액은 648억달러(2012년 기준)에 이른다. 석유제품(562억달러) 반도체(504억달러) 자동차(472억달러) 선박(397억달러) 수출액을 뛰어넘었다. 해외건설을 차세대 선도산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중동지역 중심의 수주지역 탈피 △독보적 첨단 건설기술 개발 △부가가치 높은 투자개발형 사업 확대 등 핵심 수주역량 구축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싱가포르의 관광명소였던 주롱(Jurong)섬.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로 변신 중인 이곳은 유럽의 ARA(암스테르담·로테르담·앤트워프), 미국의 휴스턴과 더불어 세계 3대 ‘오일허브’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2009년 ‘주롱 석유화학단지’의 차세대 핵심 시설인 해저 유류비축기지 1단계 건설공사를 6억달러에 수주했다. 주롱섬 인근 반얀만 해저 200m에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5척과 맞먹는 약 930만배럴(150만㎥)을 저장하는 유류비축기지와 유조선 접안·운영시설 등을 건설하는 세계 토목분야 대역사(大役事)다.

수주 다변화가 이룬 토목 대역사


[건설한류, 연 수주 1000억弗 시대 열자] 해외수주 절반이 중동…과당경쟁에 본전도 못뽑아
지난달 20일 주롱섬 유류비축기지 공사현장. 6~7명이 겨우 몸을 실을 수 있는 낡은 엘리베이터가 느릿느릿 아래로 움직였다. 지상과 해저를 연결하는 유일한 인부용 엘리베이터다. 3분쯤 내려가자 어둠 속에 암반을 깨는 천공(穿孔)소리, 불도저·포클레인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엄습했다. 온도계는 섭씨 36도. 마스크를 쓰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300여명(밤에는 100여명)의 근로자들은 2교대로 하루 24시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저 200m 현장은 12.5㎞에 이르는 수십개의 터널로 연결돼 있었다. 지하 1층에 해당하는 폭 12m, 높이 12m의 터널은 각종 건설장비가 쉴 새 없이 오가는데 ‘개미집’처럼 복잡했다. 조금 걷다 보면 길이 좌우로 갈라졌고, 다시 200~300m 가다보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나기 일쑤여서 미로를 방불케 했다.

해저공사여서 ‘바닷물과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오는 5월 완공을 앞두고 있지만 일부 터널 천장과 벽에서는 물이 뚝뚝 새어나왔다. 해저 암반 속 바닷물의 압력은 수심 100m에서 전해지는 압력과 비슷한 10바(bar)에 이른다.

문갑 현대건설 상무는 “직경 4.5㎝의 작은 구멍을 15~20m까지 뚫은 뒤 시멘트를 주입해 작은 틈새를 채우는 ‘그라우팅’ 작업이 필수”라며 “공사 초기에는 펌프 용량을 10배 이상 초과하는 바닷물이 터널로 밀려와 시멘트로 물줄기를 막는 데만 5개월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석유증기의 누수를 방지하는 것은 핵심 기술이다. 저장용 석유에서 발생할 유증(油蒸)이 터널 안으로 퍼지면 대형 폭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인공수막(water curtain)’공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저장탱크에서 30m 떨어진 곳에 폭 5m, 높이 6m의 작은 터널을 수평으로 만들고, 다시 10m마다 지름 10㎝의 구멍을 수직으로 70m까지 뚫어 바닷물을 채웠다. 저장터널 주위로 수압이 가해져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동시에 주변 암반 사이로 물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유증을 가둔다. 싱가포르 국책사업인 ‘주롱 프로젝트’의 수주는 30년 싱가포르 시장 개척의 결과다. 현대건설은 현재 싱가포르에서만 17개 사업장에서 3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27곳 글로벌 네트워크…“내년 영업익 1조”


현대건설은 지난해 11월 국내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누적 해외수주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 같은 성과는 종합상사처럼 잘 갖춰진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일찍부터 시장 다변화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7곳, 중동 5곳, 중남미 3곳 등 27개 지역에 해외지사와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다.

권오식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장은 “최근 들어서도 새로운 시장 개척은 계속되고 있다”며 “국내외 경쟁사들의 진입이 본격화되지 않은 중남미와 독립국가연합(CIS)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엘도라도’ 진출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10년 콜롬비아에 이어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에 지사를 설립해 발전소, 정유공장 등 부가가치가 높은 공사들을 수주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등 CIS 지역에서도 8억달러가 넘는 복합화력발전소 등 각종 인프라 공사를 따내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CIS 지역이 해외수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1%로 가장 높았다. 중동(24%)은 아시아(26%)에 이어 3위에 불과했다. 경쟁사들이 저가 수주로 인한 ‘어닝쇼크’를 겪고 있지만 현대건설은 작년 영업이익이 8000억원을 넘는다.

한종효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우수한 시공능력에 시장 다변화 노력 등이 더해지면서 현대건설은 업계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다변화된 지역에서 수주한 공사가 매출로 연결되는 2015년에는 건설사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돌파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 글싣는 순서

(中) 글로벌 특화기술로 공략하라
(下) 해외공사 자발적으로 창출하라

주롱=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