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축의 날' 50주년] 경제 혈액 vs 소비 장벽, '양날의 칼' 저축
“국민 한 명이 하루 10원씩 1년 저축하면 1000억원이 국가에 쌓인다.”

1969년 9월25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저축의 날’ 기념식. 푼돈을 모아 어선 두 척을 산 해녀에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민훈장을 달아줬다. 저축왕들의 미담이 신문 1면을 장식하던 때였다. 미국 무상원조 종료를 앞두고 저축으로 자립하자는 대국민운동은 1970~80년대 고속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29일은 ‘저축의 날’이 탄생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금과옥조였던 저축은 ‘양날의 칼’로 바뀌었다. 때로는 투자를 일으키는 ‘경제 혈액’이 되지만, 때로는 소비를 막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빚 권하는 사회의 후유증

[29일 '저축의 날' 50주년] 경제 혈액 vs 소비 장벽, '양날의 칼' 저축
국민경제에서 저축이란 일정 기간 번 소득에서 미래에 대비해 쓰지 않고 남긴 부분을 말한다. 특히 가계 저축은 국민의 소비여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계가 남은 돈을 예금으로 쌓아두면 경제순환에도 도움이 된다. 기업이 외채에 기대지 않고 투자와 생산을 확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것도 고속성장기 때 이야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세금 등을 내고 가계가 쓸 수 있는 전체소득 가운데, 소비하고 남은 금액의 비중인 ‘가계순저축률’은 1988년 24.7%에 달했다. 이후에도 15% 선을 웃돌던 가계순저축률은 외환위기 직후 급락해 지난해 3.4%에 그쳤다.

경제가 성숙해지면 금리가 안정되면서 저축 유인도 줄어든다. 하지만 저축을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성장률과 고용률이 동반 하락하는 ‘고용 없는 성장’ 속에 가계 소득이 줄었다”며 “사교육비 통신비 등 필수소비항목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후 5년이 지났는데도 저축률 회복이 더딘 것은 지난 6월 말 현재 980조원으로 가구당 6190만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가장 큰 원인이다. 빚을 내 집을 샀던 하우스푸어들은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강제저축의 착시

저축률 하락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세금과 사회보험 등 의무적으로 내는 비소비지출 비중이 1990년 소득 대비 15.6%에서 지난해 18.8%(도시 2인 이상 가구)로 높아졌다. 저축률 급락이 시작된 1999년은 국민연금 가입대상자가 5인 미만 도시 근로자로 확대된 시점이기도 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은 “복지가 확대되면서 사회보험과 연금 등 국가 차원의 ‘강제저축’ 부담이 급증했다”며 “개인적인 저축 여력이 떨어진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인 데서 온다. 김영봉 세종대 교수는 “내가 따로 저축하지 않아도 국가가 미래를 책임져줄 것이라는 오해가 퍼졌다”며 “문제는 현 복지 수준이 노후를 맡기기엔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저축이 부족한 젊은 층으로 인해 미래에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저축과 소비는 동전의 양면

저축을 위해 소비를 무조건 줄이는 것도 답은 아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평균소비성향은 올 2분기 73.1%로 9분기 연속 하락(전년 동기 대비)했다. 불확실한 미래 탓에 다들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소비를 더 줄이면 경제의 ‘돈맥경화’가 심해진다.전문가들은 저축을 소비의 반대말이 아니라 ‘마중물’로 보는 지혜를 요구한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일수록 아쉬운 게 가계 저축”이라며 “저축률이 좀더 높았다면 최근 고용호조에 따라 소비도 빠르게 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소득층에는 다양한 금융상품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저축률부터 끌어올려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