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수요 공백으로 일시적인 '잠복기'
"하반기 다시 전셋값 오를 가능성 커"


4월 들어 서울의 전셋값이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지난 겨울을 강타한 최악의 전세난이 해소된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그러나 부동산 현장에서는 올해 초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른 데 따라 잠시 조정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잠복한 만큼 수요가 늘어나는 하반기에는 전세값이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도 "하반기에 전세난이 재연될 우려가 있다"며 정부에는 대책 마련을, 수요자들에게는 비수기를 이용한 선제적인 전세계약을 각각 권고했다.

◇ '재계약ㆍ선점효과'로 전세수요 급감 = 극심한 전세난이 외관상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24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이달 첫째 주부터 3주 연속 0.01%씩 내려갔다.

신도시와 수도권도 최근 들어 가격 변동이 없거나 0.05% 미만의 소폭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주춤하는 모습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공개된 서울의 아파트 전ㆍ월세 계약 건수도 계약일 기준으로 1월 8천603건, 2월 7천375건, 3월 4천063건, 4월(24일 현재) 1천84건 등으로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전세시장이 안정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수요가 갑작스럽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연초 전셋값이 가파르게 뛰자 더 오를 것을 두려워해 몇 달이나 미리 이사하거나 재계약을 맺고 살던 집에 눌러앉은 수요자들이 많았던 탓에 정작 봄 이사철에 전셋집을 알아보는 수요자가 없어졌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이야기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O공인 대표는 "전세난은 풀린 게 아니다.

여전히 공급량 부족으로 시장이 교란된 상태"라며 "길음뉴타운 전셋값이 3천만원 가량 올랐는데 만기가 된 기존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잘 이야기해 2천만원 정도 오른 가격에 재계약해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강동구 고덕동 S공인 대표도 "입주 2년차를 맞은 아이파크 아파트 세입자들이 조금씩 가격을 올려 거의 다 머무르는 분위기"라고 했다.

신혼부부 등 봄 이사철의 전통적인 수요자들마저 실제 이주하는 날짜보다 빨리 2~3월께 미리 계약한 사례가 많다는 전언이다.

분당의 S공인 관계자는 "보통 5~6월까지 전세를 찾는 신혼부부 고객들이 있었는데 전세대란이라고 사람들이 미리 집을 구해버려 지금은 한산하다"며 "심지어 5월이나 6월 입주할 손님이 2월 이전에 계약한 사례도 몇 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분간 전세시장은 수요가 한꺼번에 자취를 감춘 이상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름방학 이후 전셋값 재상승 우려 = 최근 전셋값 안정세는 일시적인 수요 공백에 따른 현상이라는 점에서 수요가 발생하는 여름방학을 계기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주 -0.25%로 하락폭이 가장 컸던 강동구의 S공인 대표는 "수요는 없는데 당장 급하게 나가야 하는 세입자가 있으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에 새 계약을 할 수밖에 없어 전셋값이 내려간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전셋값이 내린 것이 아니라서 다시 오를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임대시장 안정을 위해 공공아파트 5천375가구의 입주를 한 달씩 앞당기기로 했지만, 2008년 분양가 상한제 도입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간주택 공급량이 급감한 데 따른 후유증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거래활성화를 목표로 한 정부의 3.22 부동산대책이 오히려 매매시장을 더욱 침체시켜버린 결과가 하반기 전세시장에 더욱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셋값이 지나치게 올라 매매시세와 별 차이가 없어지면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눈길을 돌리면서 전세시장의 수급 균형을 맞춰주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거래심리가 위축된 현 상황에서는 아무리 전세난이 심해도 매매로 갈아타는 수요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전세시장의 불안요소가 많은데 첫 번째는 매매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전세물량 부족이 매수심리를 자극하면 세입자들이 집을 사버리든가 분양을 받는 등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데 지금은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으니 다들 전세시장에 머무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나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아파트 등 대형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장이 올 하반기 한꺼번에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전세난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송파구 P공인 관계자는 "7월 여름방학부터 전셋집을 구하는 손님들이 다시 나올 텐데 가락시영 등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 한꺼번에 이주를 시작하면 전세난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세난 재발 대책 세워야 = 하반기 전세난 재발 우려가 큰 만큼 정부의 한 발짝 앞선 대책 마련과 수요자들이 '똑똑한' 선택이 중요하다.

정부는 작년 말~올해 초 전세 대란을 거울삼아 '전ㆍ월세 상한제' 등 답보 상태에 빠진 각종 임대 관련 정책을 조속히 추진하고, 수요자들은 이주 시기를 앞당겨 미리미리 전셋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함 실장은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전ㆍ월세 상한제의 적절한 상한 가격이 얼마인지 지금부터 조사를 해야 한다"며 "내년 초 총선을 앞두고 전세문제를 미리 해결하지 못하면 여론이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이미 작년 말부터 세입자들이 값이 싼 곳을 찾아 좋은 전셋집을 선점해놓고 계약만 해놓은 뒤 나중에 입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올해 하반기에 전세난 재현 우려가 크니 비수기인 2분기 입주단지 등에서 전세를 미리 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함 실장은 "수요자들은 정부 정책의 추이를 잘 지켜보면서 하반기 입주 예정 아파트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웬만하면 임대인과 잘 협의해 살던 집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재계약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이유진 기자 firstcircle@yna.co.kreugen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