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300억원 규모 하수처리장 입찰에 대형 건설사 3곳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참여해 따내더군요. 예전엔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 지금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

대형 건설사인 D사의 수주담당 임원은 "발주 물량이 워낙 줄어들다 보니 소규모 공사도 몇몇 업체가 협력해 수주전에 나서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공사 물량 급감

무엇보다 국내 건설공사 물량은 2007년 127조9000억원을 기록한 뒤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작년엔 103조2000억원으로 간신히 100조원대에 턱걸이했다. 공공공사는 2009년 정부가 건설경기 진작 차원에서 발주를 앞당기고 4대강 살리기 공사도 본격화돼 전년도 41조8000억원에서 58조4000억원으로 늘었으나 작년 다시 38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문제는 올해 공공공사 발주가 거의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올해 신규 도로공사 발주가 없고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도 줄어 건설업계 수주난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여파로 진흥기업 LIG건설 등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대 건설사 중 27개사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갔거나 예정돼 있다.


◆PF 부실 정리에 발목

금융권의 PF 부실 구조조정 작업도 건설사들의 단기 자금난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8개 국내 은행의 부동산 PF 부실 채권 금액은 2009년 말 1조2000억원에서 작년 말 6조4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부실 PF 대출 비중도 2.32%에서 16.44%로 급증했다. 연체금액은 9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치솟았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프로젝트금융본부장은 "은행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PF 대출에 대한 신용도 기준을 상향하고 PF 대출 한도를 낮추면서 건설사들의 자금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며 "지난 28일에는 여의도 증권가에 건설사 수개사가 추가로 손들고 나올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재무관계자는 "은행들이 PF 대출을 포함한 건설사 여신 공여 한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PF 총량규제를 해 건설사 신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실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 정부 내에 있어 국토부로서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해외선 '제살 깎아먹기'까지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사들이 해외 진출에 고삐를 죄면서 최근 해외 출혈 수주 사례마저 부쩍 늘고 있다.

A건설사는 사우디아라비아 발주처와 10억달러 규모의 공사계약을 눈앞에 두고 B사에 당했다. A사가 검찰 수사와 관련된 사실을 B사가 사우디 발주처에 알렸고 결국 공사를 가로채 갔다는 것이다. 지난해 경력 ·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충원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선 B사가 실적 증대를 위해 '비신사적 행위'를 했다고 A사는 주장했다.

10위권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싱가포르 발주처와 계약을 앞두고 있었는데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저가로 중간에 치고 들어와 결국 공사를 뺏겼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