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파트 청약시장은 '저조한 흥행성적'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순위 내 마감된 단지보다 청약자 '제로(0)'였던 단지가 더 많았다. 모델하우스 방문객이 몰려들어도 청약결과는 저조한 곳이 적지 않았다. 서울 강남,광교신도시 같은 인기지역에만 청약이 쏠리는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26일 금융결제원 청약경쟁률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공급된 민간 아파트 총 174개 단지 가운데 1순위에서 전 주택형이 마감된 단지는 15개에 그쳤다. 반면 제로 청약률 아파트는 35개 단지에 달했다.

3순위에 마감된 곳도 22곳뿐이어서 전국 신규분양 단지 가운데 37개(21.2%)만이 순위 내에 접수가 마감됐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웬만한 인기지역이 아니면 청약통장을 쓰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건설사들은 청약률보다 계약률에 더 관심을 쏟은 한 해였다"고 말했다.

◆청약률 제로 아파트 급증

작년만 해도 청약률 제로 아파트가 등장하면 이슈가 됐지만 올해는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었다. 지방에서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속출했다. 단지 규모가 작거나 중소업체들이 분양한 단지는 물론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 건설업체 물량도 일부 포함돼 업계를 긴장시켰다.

이들 단지는 수요자들이 청약통장 활용을 꺼리는 대형 평형이거나 임대전환을 목표로 공급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제로 청약률이 아니더라도 올해 수도권에서 공급된 단지 가운데 청약자가 5명이 채 안 되는 곳들도 적지 않았다"며 "올해 분양시장이 얼마나 침체됐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역시 부동산은'입지'

전통적 인기지역은 올해도 역시 빛을 발했다. 올 한 해 동안 서울 강남과 광교신도시에서 공급된 단지들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쳐 '부동산은 입지'라는 공식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특히 눈에 띈 곳은 광교신도시였다. 올 1월 한양수자인과 자연앤자이는 각각 6.8 대 1과 24.7 대 1의 경쟁률로 1순위에서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이어 5월 대림산업이 광교신도시 A-7블록에 공급한 e편한세상도 1934채 모집에 1순위에서만 2만116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10.4 대 1로 청약을 마쳤다. 올해 인기상품으로 꼽을 만하다는 평가다.

광교 e편한세상의 청약열기는 계약으로도 이어져 1순위 당첨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계약률이 92%를 기록하기도 했다. 실수요자들에게 다소 인기가 적은 전용 100㎡ 이상의 중대형으로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약률 및 계약률이 높았던 것은 광교의 중심이라는 입지여건 때문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강남지역도 인기리에 분양이 완료됐다. 지난 6월 공급된 래미안 그레이튼과 반포힐스테이트는 10.6 대 1과 8.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 22일 1순위 청약접수를 받은 반포리체는 10.8 대 1로 청약을 마쳤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강남지역은 워낙 대기수요가 많은 데다 일반공급 물량이 적게는 20여채,많아야 100채 정도에 불과해 항상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공급된 아파트들은 입지가 좋았던 데다 인근 아파트보다 저렴한 수준의 분양가로 나와 더욱 주목받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부산지역 청약시장 훈풍

주식시장에서 대부분의 종목이 내림세를 보이는 하락장에서도 상한가를 치는 종목이 있듯이 분양시장에서도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 속에서 돌풍을 일으킨 곳이 있다. 올해 돌풍의 진원지는 바로 부산이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청약률 제로 아파트가 나왔던 부산지역 분양시장 분위기는 7월 이후 급반전됐다. 시작은 협성종합건설이 해운대구 옛 기린제과 부지에서 7월 분양한 센텀 협성르네상스다. 예상을 뒤집고 5 대 1의 경쟁률로 순위 내에서 전 주택형이 마감되면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부산지역 청약시장 훈풍은 11월에 최고조에 달했다. 오랜만에 모델하우스에 줄서기 풍경이 다시 나타났다. 주목을 받은 당리동 푸르지오를 시작으로 해운대 자이,다대 푸르지오 등 3개 단지가 잇달아 분양대박을 터뜨렸다.

해운대 자이는 587채 모집에 무려 1만3262명이 청약해 평균 22.6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동식 중개업소인 일명 '떴다방'이 모델하우스 주변에서 자리 선점에 나설 정도였다.

GS건설 관계자는 "부산지역에는 최근 5년간 공급 부족으로 전셋값이 뛰고 소형 아파트 매매가가 강세를 보여 신규 아파트에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며 "전용 84㎡ 이하의 중소형 평형이 한동안 공급이 없어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까지 몰렸다"고 전했다.

당시 건설업계에서는 부산발 분양 훈풍이 서울 및 수도권까지 북상하는 것 아니냐며 기대감이 많았지만 '찻잔 속 돌풍'에 그치며 올해를 마감하게 됐다.

이유선 한경닷컴 기자 yu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