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1) "건설비중 GDP 20% 육박하는데…글로벌 기업은 한곳도 없어"
"오죽하면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건설업체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했겠습니까. "(H건설 사장)

작년에 이어 올해도 건설사들이 무더기로 구조조정 리스트에 오르면서 건설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수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 공급 중심으로 부동산 시황에만 의존해온 '천수답' 경영에 시장경제 논리를 과감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종별 이해관계에 따라 얽히고 설킨 각종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건설업계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려면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몰아치는 구조조정 후폭풍

건설사들은 시장 침체가 심화하는 가운데 구조조정의 회오리까지 몰아닥치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명단에 오른 건설사 대부분은 주택 전문 업체들이어서 부동산 경기가 풀리지 않는 한 자구노력을 펼치더라도 경영 정상화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건설산업, 구조조정 넘어 선진화로] (1) "건설비중 GDP 20% 육박하는데…글로벌 기업은 한곳도 없어"

구조조정 대상 업체들은 벌써부터 자산 매각,대규모 인력 감축,조직 축소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워크아웃 리스트에 오른 A건설은 "서울 도심에 오피스 빌딩과 자체 사업으로 추진 중인 아파트 등을 시세보다 낮춰 일괄 매각을 추진하고,임금 삭감과 함께 직원 30%가량을 감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불안은 깊어지고 있다. 신규 아파트 계약자 이탈,신규 공사 수주 부진,미분양 계약 중단 등 악재를 만났지만 경쟁 기반을 갖추지 못해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건설산업 선진화 계기 삼아야

건설업체들의 부실은 양적인 팽창을 따라갈 정도로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8.4%다. 일본(11.8%) 미국(10.5%) 영국(10.6%) 등 주요 선진국보다 2배 정도 높다.

건설업계의 외형 성장은 두드러졌지만 업체당 수주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1997년 28억원에서 2007년에는 23억원으로 18% 줄었다. 집이 잘 팔리거나 공사 일감이 늘어나면 너도 나도 창업에 나섰고,그에 따라 출혈 · 과당 경쟁도 심해졌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벡텔처럼 글로벌 건설 시장을 주도할 만한 건설사가 아직 국내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 플랜트나 원전 건설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글로벌 건설 시장 전체로 보면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칸막이 규제 · 오락가락 정책 없어야

겸업 금지 등의 칸막이 규제도 신기술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 3월까지 2년간 국토해양부의 건설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은 "건설산업 선진화는 성수대교 붕괴나 건설사 부실 사태 등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해온 단골 메뉴"라며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건설업 사업영역 구조 개혁,업역 간 이해관계 조정 등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호 GS건설연구소장은 건설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로 △글로벌 기준과 어긋나는 300여개의 법제와 칸막이식으로 나뉜 사업영역 △공공공사 발주 방식 획일화 및 후진적 입찰 · 낙찰 제도 △취약한 설계 · 엔지니어링 능력 △불공정 하도급 거래로 인한 부정 · 부패 등을 꼽았다. 이 소장은 "워낙 방대해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인식을 갖고 영국 등 선진국들이 건설산업을 선진화시킨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택사업 분야야말로 시급하게 수술해야 할 분야로 꼽힌다. '돈 된다'는 이유로 시장 상황을 외면한 채 확장해온 만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건설사들이 만든 문제에 대해 시장 불안을 이유로 온정적으로 지원을 반복하는 오락가락 정책을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