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소재 2층 주택 소유자의 사망으로 부인 조모씨와 네 자녀들이 주택을 공동상속했다. 이들의 지분은 부인 조씨가 11분의 3,네 자녀는 각각 11분의 2였다. 그런데 유족들 사이에 재산상속을 두고 다툼이 있던 중,부인 조씨와 차남은 다른 자녀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인 4명과 주택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다른 자녀 3명은 2005년 상속재산분할심판에 따라 보증금 일부를 분배받았고,심판 후 조씨가 받은 전세 · 임대보증금 및 임대수입은 자녀들의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됐다.

이후 장남 이모씨 등 다른 자녀 3명은 "조씨 등과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니 손해배상하라"며 임차인 4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임차인들은 "자녀들에게 임대차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조씨의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으므로,민법상 표현대리의 법리에 따라 효력이 있다"고 맞섰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임차인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 합의부로 최근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임대 등 공유물 관리는 공유자 지분 과반수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며 "과반수에 못 미치는 공유자의 임대행위는 나머지 공유자에 대해서는 무효인 계약"이라고 밝혔다. 임차인 4명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조씨와 차남의 지분은 합쳐서 11분의 5로 과반수가 되지 못한다.

재판부는 "소수지분권자(조씨,차남)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은 권리 없이 공유물을 점유 · 사용해 이득을 얻는 대신 다른 공유자(장남 등 자녀 3명)에게는 그만큼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며 "임차인들이 소수지분권자인 조씨에게 임차보증금과 임차료를 냈다 해도 다른 공유자들이 손해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원심은 "임차인들은 조씨와 차남이 과반수 상속지분을 가진 다른 자녀들의 동의 없이 주택을 임대한다는 사정을 알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했으므로,불법행위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면서 "약정한 보증금과 임차료를 모두 지급한 임차인들이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속다툼을 벌이던 주택에 들어선 세입자들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