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일부 상가에서는 최근 상가 임차료가 오르면서 권리금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권리금은 상가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영업권 보상비다. 경기침체나 상가공급 과잉 등으로 상권이 위축될 때는 권리금이 하락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서울 도곡 · 대치역,테헤란로 일대 핵심상권의 경우 올 들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권침체가 적었음에도 점포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서 권리금이 하락하고 있다. 임대료가 오르면 세입자들의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란 게 중개업계의 분석이다.

5년 전 강남구 도곡로 대로변의 한 대형 상가 1층 점포에 3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K씨는 최근 점포 이전을 하면서 한 푼의 권리금도 챙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날렸다. 월 1000만원이던 임대료가 5년간 2000만원까지 뛰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형 전자제품 매장으로 쓰였던 264㎡짜리 이 점포는 두 달간 비어 있다가 지난달 세입자가 들어왔다.

인근의 소형 상가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한때 2억원까지 뛰었던 66㎡짜리 상가 권리금은 요즘 1억~1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식당을 운영 중인 정모씨(45)는 "근처에서 10년 이상 식음료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뛰는 임대료 감당이 어려워 상가를 옮겨야겠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권리금마저 낮아지고 있어 폐업하려는 세입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학원가 일대 상가도 비슷한 분위기다. 대로변에 자리잡은 근린상가 2층 330㎡형 점포의 월세는 4,5년 새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러는 사이 권리금은 3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고꾸라졌다. 학원 밀집지역인 이곳은 최근 불경기에도 전체적인 상권에 타격이 적었다는 게 현지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권리금 하락은 일반 점포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부동산 물건을 중개하는 중개업소 사무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타워팰리스 등 강남권 대표 주거단지들이 모여 있는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주변 중개업소들의 경우 3년 전에는 권리금이 최대 1억원 선까지 거래됐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는 2000만~3000만원 수준까지 추락했다. 150만원이던 월세가 250만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도곡역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료가 오르면 건물의 임대수익률도 좋아져 건물 매매가격이 따라서 높아지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꾸준히 임대료를 올린다"며 "대치동의 경우 임대수요가 비교적 많은 편이어서 건물주들은 임대료 인상에 따른 공실 부담을 덜 느낀다"고 설명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상업용 건물의 임대료 상승은 점포 세입자들의 권리금 약화로 이어진다"며 "하지만 경기침체 상황에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상권은 강남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흔치 않다"고 분석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