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택건설 사업자가 사업부지의 80% 이상 땅을 확보한 경우 나머지 땅을 강제 수용할 수 있게 한 데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개발사업을 막으면서 투기 이득을 얻는 '알박기'가 아닌 한 개인 재산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수원지법 행정2부(부장판사 전광식)는 민간 건설사업자에게 땅을 강제로 팔아야 할 처지에 놓인 조모씨가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화성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파트 건설에 편입되는 원고의 토지가 전체 사업부지의 12.3%에 불과해 이를 제외하더라도 아파트 단지 조성이 가능하고 땅주인이 부당 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이 없어 보이는 점 등을 미뤄볼 때 화성시가 재량권을 남용해 주택건설사업계획을 승인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자치단체가 토지 소유권을 잃는 토지주의 불이익과 주택건설의 공익성을 객관적으로 비교 판단하지 않고 주택건설사업을 승인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J건설은 지난해 8월 화성시로부터 화성시 향남읍 일대 7만6000여㎡에 1308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조씨는 이 사업부지 내 9000여㎡의 땅이 편입됐으나 토지를 팔지 않았다. 이에 사업부지의 80% 이상을 확보한 J건설은 조씨에 대해 매도청구권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고 패소한 조씨는 화성시를 상대로 "토지주의 권리를 침해해 주택건설사업을 승인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J건설은 조씨의 땅을 사업계획에서 제외하는 등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아 화성시로부터 사업계획을 재승인받아야 한다. 화성시 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건설사업계획은 유효하다"며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자치단체가 민간 주택건설사업을 승인할 때 법적 매도청구권 요건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고 토지 주인의 이익을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즉 사업지구 내에 투기적인 목적으로 전체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알박기' 행위와 개인의 정당한 재산권을 지키려는 행위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알박기'가 만연하면서 안정적인 주택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2005년 주택법을 개정해 국가 · 자치단체 ·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 사업자도 사유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알박기 목적이 없는데도 민간 사업자가 매도청구권을 무분별하게 행사해 개인의 재산권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으며 일부 토지주들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수원지법 신우정 공보판사는 "주택법 매도청구 조항은 위헌 논란이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 주택건설사업 승인이 자치단체의 재량 행위라는 것에서 출발해 사업 승인권자인 자치단체가 지나치게 사업자만의 이익을 우선했다고 판단해 사업 승인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