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원로와 각계 대표를 망라한 1100여명이 10일 '세종시 건설계획 수정촉구 지식인 성명'을 발표키로 해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논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종시로의 행정부처 이전 여부를 놓고 여야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그동안 세종시 건설계획을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간헐적이고 독립적으로 내왔던 인사들이 이번에 집단 서명에 나선 것은 행정부 이전을 강행할 경우 정부 업무의 비효율은 물론 국가경쟁력 전반에 엄청난 부작용이 야기할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종시판 시국성명'을 통해 정당 간 · 지역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치고 있는 세종시 문제를 공론에 부침으로써 여론 형성을 주도하겠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등 서명에 참여한 인사들은 세종시 건설을 "행정기관을 분리 배치해 막대한 행정 비효율을 야기하는 망국적인 조치"로 규정하고 "국가 장래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오로지 포퓰리즘적 결정만으로 나라가 망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섰다"고 밝혔다.

서명자들은 행정부 이전에 따른 국가적 난맥상으로 △균형성장 논리의 허구 △행정 업무의 비효율 △도시경쟁력 저하 등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행정기관 분할 배치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만약 대통령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 결정이라면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명서는 또 행정업무의 비효율이 구체적으로 나타날 양상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행정기관이 분할 배치되면 공무원들은 서울과 세종시 사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며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격리로 분초를 다투는 국가안보 위기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화상회의를 통해 비효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화상회의는 보안이 지켜지지 않아 국가의 중요사안을 토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 화상회의를 도입했던 노무현 정부도 단 두 차례밖에 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서명자들은 이와 함께 행정기관 이전 중단을 전제로 충청권 발전전략을 별도로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청사 건축을 위한 예산을 충청권에 제공해 과학비즈니스벨트,녹색 선도기업,우수대학 등이 어우러지는 녹색신성장 복합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9일 발표한 정기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종시의 '수정 또는 축소'의견이 39.6%로 '원안 추진'(36.0%)보다 높게 나타났다. 서울(50.0%)을 비롯 인천 · 경기(45.3%) 대구 · 경북(40.5%)은 수정 또는 축소의견이 높은 반면 대전 · 충청(67.1%) 부산 · 울산 · 경남(35.0%),광주 · 전라(35.9%)는 원안 추진의견이 우세했다.

특히 충남이 텃밭인 자유선진당 지지층의 경우 원안 추진과 수정 · 축소가 각각 40.1%대 41.8%로 팽팽히 맞서,원안 추진 의견이 훨씬 높은 충청권 전체 의견과 상이한 결과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윤희웅 KSOI 정치사회조사팀장은 "충청지역에서의 자유선진당 지지율이 민주당(29%) 한나라당(28%)의 절반수준인 15%에 그치고 있어 전체 충청권 의견과 편차를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일훈/김형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