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건설업계 "수직증축 허용, 특별법 제정해야"
정부 "건물안전 등 예상문제 해결책 마련이 우선"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노후화 해법으로 리모델링 공동 추진을 선언하며 정부에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은 신중하다.

리모델링 활성화에는 공감하지만 증축에 따른 건물 안전, 일조권 침해,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 등 예상되는 많은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주민과 건설업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리모델링 활성화 지원책 가운데 핵심은 수직 증축 허용 여부다.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은 대부분 지어진 지 15년 이상 된 구식 아파트라 안방 하나 또는 안방과 거실이 햇빛을 보는 전면에 배치되는 1-베이(bay)나 2-베이 구조다.

그러나 최근 3-베이나 4-베이가 대세가 되면서 거실이 가정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자 거실은 넓어지고 방은 줄어드는 추세다.

리모델링을 통해 비좁은 집안의 생활공간을 재배치하려면 기존 아파트 위로 3~5층은 올려야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동 간 거리가 짧은 아파트는 수평 증축을 할 수 없어 수직 증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주택법에서 정한 리모델링 가능 면적(전용면적의 30%) 비율도 평형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돼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이 비율을 적용하면 대형 평형 가구는 상대적으로 더 넓어지고 소형 평형 가구는 덜 넓어지게 되므로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5㎡)에 대해서는 증축시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민과 업계의 생각이다.

리모델링 관련 규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혼선이 빚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리모델링 제도는 주택법과 건축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어 리모델링 추진 시 이들 3개 법의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추진 연합회' 유동규(40) 회장은 "지자체 리모델링 담당 공무원이나 건축심의 위원회의 자의적인 법 해석이 곧 리모델링법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루빨리 리모델링과 관련한 특별법을 제정해 법적 혼선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리모델링이 앞으로 주택 및 건설 시장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에 대비해 초기 부작용과 혼선을 막으려면 국토해양부에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수년 전부터 리모델링에 관심을 두고 영업에 뛰어든 건설업계와 건축구조기술사 등 전문가들은 주민의 주장에 동조하는 반면 정부는 안정성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리모델링협회는 지난 4월 수직 증축과 내력벽 철거에 의한 세대합병 허용 등 공동주택의 리모델링 관련 제도 개선을 국토해양부에 건의했다.

한국리모델링협회 및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차광찬(50)이사는 "정부가 붕괴사고를 우려해 수직 증축을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증축된 부분의 하중이 기존 아파트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건축공법이 있어 수직 증축은 안전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아파트라도 현재 내진 규정에 맞게 건물의 하중을 분산시키거나 기존 건물의 강도를 보강하면 역시 안전상 문제 될 게 없다는 견해다.

그러나 정부는 리모델링 활성화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활성화 속도와 리모델링 방법론에는 다른 생각이다.

국토해양부 주택건설공급과 박재열 사무관은 "입주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파트 리모델링은 필요하지만, 현재 추진되는 리모델링은 증축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동주택 리모델링이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서 관련법을 바꾸고 활성화 대책을 당장 내놓으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증축에 따른 안전, 용적률, 비용, 증축 시 일조권 침해 등의 문제를 사전에 검토하는 연구용역과 전문가 토론회 등 검증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사무관은 "녹물이 나오고 주차장이 비좁으면 주민들이 1천만~2천만원을 들여 그 부분만 고쳐서 생활할 수도 있는데 오로지 증축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과연 리모델링이 주민에게 이로운지, 건설업계만 살찌우게 하는지 등을 길게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돈이 없어 리모델링을 찬성하지 않지만 다수에 이끌려 참여하는 소수 주민의 권리, 리모델링 공사로 수천 가구 주민이 이주할 때 발생하는 전세 문제, 리모델링 아파트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분쟁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성남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hedgeho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