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 비용을 입주자로 구성되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아닌 시장 · 군수가 부담하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시행령'이 지난 6일부터 시행되면서 하반기 재건축 추진위원회들의 안전진단 신청이 '올스톱' 됐다. 정부는 주민들이 마음대로 하는 재건축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기존 도정법 시행령을 개정,안전진단 비용을 관할 관청이 부담할 수 있도록 했다.

2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안전진단 신청을 앞뒀던 추진위원회들이 비용 문제로 혼란에 빠져 난항을 겪고 있다. 개정된 도정법 시행령 21조는 안전진단 비용을 해당 구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정작 구청들은 추가 예산을 편성해 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개정된 도정법 시행령 21조 1항은 도정법에 따른 안전진단에 드는 비용은 시장 · 군수가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2항은 일부 특별한 경우에 한해 안전진단에 드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안전진단 실시를 요청하는 자에게 부담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따라 안전진단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놓고 재건축 추진위와 해당 구청이 기싸움을 하고 있다. 관할 구청 측은 배정해 놓은 예산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고,추진위 측은 구청이 예산을 추가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달 말 안전진단을 신청할 예정이었던 서울 잠실주공 5단지다. 재건축추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송파구청 예산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게 맞다"며 "이에 관한 확답을 듣지 못해 안전진단 신청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를 예상하지 못해 안전진단 예산을 편성해 놓지 못한 송파구청은 "개정법에 따르면 반드시 구청이 안전진단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민들이 부담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추진위가 안전진단 신청을 하면 절차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서울시내 거의 대부분의 구청이 안전진단 비용을 편성해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초 예산 편성이 안 된 상황에서 추가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반기에 안전진단 신청을 계획했던 강북의 한 추진위원장은 "안전진단 비용이 해결되지 않아 고민"이라며 "구청에서 예산이 없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기 위해 안전진단 비용을 구청이 부담하도록 한 취지는 옳지만 애매한 법령 때문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며 "서울시가 나서서 조율을 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