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정부의 ‘8·23 전세 대책’은 전세자금 지원 외에 딱히 눈에 띄는 대목이 없는 데다 시장에 한 발 뒤늦은 대응이란 점에서 전세값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재개발 이주 수요가 올해보다 5배 가량 늘어나고 아파트 입주물량은 줄어드는 내년에 전세시장이 더 요동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주택당국이 건설경기와 주택거래 활성화에만 골몰한 나머지 전세대책과 관련해선 ‘실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알맹이 없는 전세대책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전세대출 6000억~8000억원 추가 지원 △전세대출보증한도 확대(1억원→2억원)를 약속했다.하지만 이는 전세값이 불안해지면 항상 동원되는 대증요법일 뿐이다.전문가들은 좀더 적극적인 수요대책을 주문한다.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뉴타운·재개발 이주 수요가 올해 8000세대,내년엔 3만~4만세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세수요 분산 차원에서 뉴타운·재개발 사업 일정을 정부와 서울시 등이 적극 개입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2000년대초 서울 강남의 저밀도 아파트 재건축 철거 시기를 조정한 전례가 이미 있다.

공급확대책도 좀더 실효성 있는 방안들이 동원돼야 한다.이미 사문화된 오피스텔 바닥난방 허용기준 보다는 오피스텔 전매제한(계약 뒤 1년간)을 푸는 등 오피스텔 건립과 수요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돼야 한다.도시형 생활주택도 아직 걸림돌이 적지 않다.도시형 생활주택을 서울지역에서 지을 경우,단지 규모가 100세대를 넘으면 재개발·재건축사업처럼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1~2인세대의 전세수요는 해결될 수 있지만 3~4인세대는 어떻게 하겠다는 대책이 없다”며 “일반적 주택공급 확대책이 없는 전세대책만으로는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뒤늦게 부산떠는 정부

전세값 앙등의 씨앗은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 2006년에 이미 뿌려졌다.재개발 조합들이 상한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2006년 11월로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을 앞당기는 바람에 철거와 이주 수요가 같은 시기에 몰리는 부작용을 낳았다.올초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재개발사업으로 서울의 멸실되는(사라지는) 주택수는 작년 1만8000여채에서 올해 3만여채,내년엔 4만8000여채에 달한다.올초까지 부동산 경기침체로 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멸실 주택수는 내년으로 많이 이월될 것으로 보인다.

지규현 GS건설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뉴타운 주택 멸실은 예정됐었고 다세대 빌라 등 대체주택 공급도 줄어들어 이미 1~2년전에 전세시장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며 정부의 뒷북행정을 비판했다.△집값이 올초까지 별로 안올라 전세수요가 늘어난 점 △작년 잠실과 강동구 일대 대단지 입주 이후 전세가격이 약세를 보인 점도 올해 전세값 상승 요인으로 충분히 점칠 수 있었다.전문가들은 “정부가 집값을 올리는 경기활성화가 아닌 건설업의 활성화에 더 중점을 뒀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값 상승세 오래갈 듯

도시형 생활주택의 규제완화는 오는 11월 중 주택법 시행령,주택건설기준 등을 개정해야 시행될 수 있어 이때부터 착공을 한다고 해도 실제 입주는 내년 2분기나 가야 가능하다.공급확대 효과가 내년 1분기까지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박합수 국민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팀장은 “전세값 과열양상이 당분간 진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반기 내내 전세문제가 서민은 물론 정책당국을 괴롭힐 것”으로 내다봤다.지규현 GS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올하반기 판교신도시의 1만7000세대 입주물량 등 경기지역으로 서울 전세수요가 빠져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반적으로 내년 전세시장이 더 악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