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의 재개발 · 재건축은 공공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계획 수립에서부터 설계,시공 등 모든 사업이 민간에 맡겨져 있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공공성과 공익성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보니 공공기관이 시행 주체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각종 지원제도를 마련해 공공기관의 재개발을 독려한다.

공공기관은 개발이익을 내기 힘든 낙후지역 재개발을 주도하고 반대로 개발이익이 확실히 예상되는 곳은 민간이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

공공기관의 범주도 다양해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비영리법인 등이 시행 주체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커뮤니티개발공사(CDC),근린재투자공사(NRC) 등 비영리 지역주민 조직이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CDC는 소수 인종,소수 문화 집단 거주지에서 생겨난 근린 주민 조직이다. 주민,기업인,성직자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미국에는 현재 2000개가 넘는 CDC들이 조직돼 있으며 이들의 90% 이상은 도시 재개발과 함께 서민용 저가 주택 공급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재개발 사업에는 정부 지원이 뒤따른다. 이익 발생이 어려운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부문(금융기관,자선기관 등)의 위험을 분산시켜 주기 위해서다.

대형 개발사업도 민 · 관 합동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미국 남부 맨해튼 인근을 개발한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도 민 · 관 합동 개발의 모범적인 사례다. 1979년부터 2004년까지 이뤄진 이 사업은 민 · 관 합동 특수목적회사인 '배터리 파크 시티 공사(BPCA)'가 시행을 맡았다. 슬럼가에 불과했던 33만㎡의 부지가 1만4000세대의 주택과 업무 · 상업시설,공원 · 녹지가 어우러진 첨단 복합단지로 재탄생했다.

영국의 신흥 금융 중심지인 '카나리 워프(Canary Wharf)'도 마찬가지다. 재개발로 조성된 이곳 복합단지는 원래 슬럼가였다. 영국 정부가 1978년과 1980년 지방 정부 도시계획토지법을 제정,토지를 강제 수용해 공영개발을 했던 도크랜드 도심 재개발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것이다. 개발은 민간 기업인 카나리워프그룹과 정부 출자기구로 1981년에 설립된 런던 도크랜드 유한개발회사(LDDC)가 맡았다. 중심 지역은 세계무역센터.백화점,식당가 등 상업 · 업무지구로 개발했다. 총 사업비로는 30억파운드(약 30조원)를 투입했다.

영국은 아울러 일반 재개발 사업도 1981년 이후 도시개발공사(UDC)를 설립,중앙정부 지원 아래 추진해왔다. 1999년부터는 낙후지역 재개발을 전담하는 도시재생공사(URC)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일본에서는 건설성의 도시정비정책에 근거해 설립된 도시재생기구,지방주택공급공사 등 공공법인과 민간 단체들이 사업을 수행한다.

1998년부터는 '중심시가지 활성화법'을 제정,도시 재생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해오고 있다.

싱가포르도 도시 재개발을 국가기관인 국가개발부가 계획을 세우고,시행은 주택개발청(HDB)과 도시재개발청(URA)이 맡아서 한다. 특히 싱가포르는 민 · 관 혼합체제가 대부분인 다른 국가와는 달리 완전한 공영 체제로 움직인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