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톤워커힐,신라,힐튼'

서울 강북지역의 한 재개발 구역 주민들이 지난 한달간 구경한 서울시내 고급 호텔의 이름이다. 주민들은 이 고급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디너쇼를 관람한 뒤 숙박까지 하는 경험을 했다. 지난 1일 시공사를 조합원 투표로 선정한 이 재개발지역에서 A건설사와 B건설사가 수주전을 벌이면서 보인 영업행태는 최근 재개발 수주영업이 얼마나 치열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개월 간 수주전의 최일선에서 뛰었던 30대의 여성 'OS(Out Sourcing;건설사 홍보)요원'이 기자에게 재개발 수주영업 뒷얘기를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

▷OS의 업무와 구성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접촉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조합 설립 당시 조합원들의 동의서를 걷는 역할도 하는데 주역할은 역시 재개발 · 재건축 현장에서 건설사들 사이의 수주전에 있다. 보통 30,40대 기혼여성이 많은데 남자들도 일부 OS요원으로 활동한다. 아무래도 재개발 현장은 길도 좁고 밤에는 무서운데 남자OS들이 여자OS들의 활동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함께 하는 거다. "

▷OS들은 어떻게 모집되나.

"팀장이 있다. 건설사나 정비업체가 재개발 · 재건축 현장에서 사업을 하면서 필요하면 아는 팀장들에게 전화를 해 OS요원들을 모집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팀장들은 경력이 있거나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OS요원들을 모집한다. 나는 팀장과 한동네에 살다보니 '아르바이트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하게 됐다. 성북구 한 구역에는 수주전이 심해지면서 지방에서까지 올라오더라."

▷성북구역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게 됐나.

"7월초부터 일하게 됐다. 나는 B사 OS요원으로 활동했는데 내가 있던 시점에 100명 정도 됐고 곧 150명 규모까지 늘어났다. 6월초에는 50명 정도밖에 없었는데 수주전이 치열해지면서 늘어났다고 하더라."

▷보수는 얼마나 받았나.

"하루에 15만~20만원 정도 받았다. 물론 조합원들에게 선물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경비는 별도다. 우리에게 유리한 투표를 이끌어내면 일당의 3배 정도를 인센티브로 받는다. 일당이 많은 듯 하지만 여름 한나절 재개발 현장을 뛰어다니는 육체적 피로에 조합원들을 대하는 정신적 피로까지 감안하면 크게 많다고 하기도 힘들다. 시공사를 결정하는 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A사의 경우에는 일당을 두배 올렸다고 들었다. "

▷조합원들을 어떻게 대하길래.

"처음에는 인사하고 집안일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안면을 터야 하지 않겠나. 집안에 궂은 일 있으면 도맡아 해주고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는 말동무도 해드린다. 성북구역에는 다른 재개발지역에 비해서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 이런 저런 집안일을 많이 해드려야 했다. 점심,저녁을 사달라면 사주는 건 물론이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조합원 여러 명이 식사를 하고 있으면 계산해줬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한달동안 '아침만 먹고 나오면 점심,저녁은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조합원들 사이에 흘러다니더라."

▷조합원들은 어떻게 마크했나.

"OS요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3~4명씩 집중 마크했다. 조합원들의 숫자는 678명인데 마지막에는 OS요원만 200명 가까이 되다보니 가능했다. 조합원도 그냥 마크하는게 아니고 일반 조합원,공인중개사,대의원으로 급을 나눠서 공을 들였다. 이렇게 마크하다보니 나중에는 조합원 얼굴만 봐도 A사 성향,B사 성향,중도 이런 식으로 구분이 가능해지더라."

▷원래 수주전은 이렇게 뜨겁나.

"보통 대형건설사들끼리 신사협정을 맺는데 이번 같은 경우는 좀 특이한 경우라고 들었다. 원래 광진구역에서 B사가 거의 수주하려던 걸 A사가 뒤늦게 뛰어들어 판을 뒤집었는데 성북구역에서도 B사가 2년 가까이 공을 들여놓은 걸 A사가 시공사 선정을 2개월 앞두고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두 회사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됐다. 재개발조합원 숫자에 비해 일반 분양분이 많아 수익률이 좋다는 것도 이유라고 들었다. "

▷선물이나 이벤트도 많았다고 들었다.

"선물의 경우 처음에는 화장지나 샴프 등 생활용품 선물세트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홍삼 엑기스,횡성 한우세트까지 단가가 뛰었다.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각 사의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단지를 둘러보고 오는 당일 치기 홍보행사였지만 투표일을 20일 앞두고부터는 횡성 한우 시식,온천 관광 등 1박2일 코스가 일반화됐다. 회사 별로 경쟁이 붙다보니 이벤트도 점점 세져서 고급호텔도 일반화됐다. B사가 워커힐 호텔을 데려가면 A사가 신라호텔을 데려가는 식이었다. 저녁 및 아침 식사에 디너쇼,숙박까지 해서 1인당 못해도 40만원은 들지 않았을까 싶다. "

▷돈이 많이 들었겠는데.

"각사 별로 못해도 50억~60억원은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벤트 같은 경우에도 조합원만 챙기는게 아니라 조합원의 가족,세입자까지 챙겼다. 오는 사람 막으면 '너무 까탈스럽게 군다'며 인기를 잃다보니 할 수 없었다. 워커힐 호텔 행사의 경우 800명 정도는 왔던 것 같다. "

▷여성OS 요원이 성접대를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던데.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다만 호텔 등 1박2일 코스에서 OS요원들이 잠자리까지 챙기다보니 그런 헛소문이 난 듯 하다. "

▷조합원들에게 500만원을 주고 표를 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약간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500만원까지 준 조합원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화장실이나 마루 사용료였다. 더운 여름에 300명이 훨씬 넘는 OS요원들이 7구역 내에서 활동하다보니 실제로 화장실과 휴게실을 사용하는게 큰 문제가 됐다. 물론 사용료에 비해 금액이 크다보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거 같기는 하다. 조합원의 집 뿐만 아니라 인근 중개업소도 300만~500만원 정도 주고 대여해 '아지트'로 이용했다. "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조합원이 운영하는 영업장에는 특별히 신경을 썼다. 슈퍼마켓같은 경우에는 매일 아침 수박을 전부 사서 다른 조합원들에게 돌리는 방식.미장원도 조합원들이 파머든 이발이든 마음대로 하게 한 뒤 사인만 해놓고 나면 우리가 일괄적으로 처리해주는 방식이었다. "

▷그렇게 치열하게 맞붙은 것 치고는 투표결과 표차(141표)가 많이 났다.

"투표방식이 승부를 갈랐다. 보통은 총회 이전이라도 '어느 시공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사전동의서를 조합원으로부터 걷을 수 있는데 이같은 방식을 없애고 조합사무실에 나와 투표를 하는 사전투표제를 도입했다. 장소에 상관없이 만들 수 있는 사전동의서와 달리 사전투표제는 OS요원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보니 OS요원을 동원한 영업력에 사활을 건 A사가 불리했다. B사가 2년전부터 사전작업을 하면서 대의원들을 상당수 자기 편으로 돌려세운게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

▷총회장도 상당히 과열됐을 것 같다.

"가관이었다. 각사가 홍보영상을 통해 상대방을 비방하기에 열을 올렸다. 조합원과의 분쟁이 있는 다른 재개발 현장의 사례를 들며 상대 회사를 깎아내렸다. B사 로고가 망치에 깨지는 장면이 상영됐고 A사 로고는 번개를 맞고 떨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조합원들도 A사와 B사로 갈려 상대측 동영상이 나오면 야유하고,지지회사측에는 환호를 보냈다

"

▷총회에서 투표는 200여표고 60% 넘는 투표는 사전투표로 이루어졌다는데.

"자기 회사에 대한 지지가 확실한 조합원들만 총회장에 나오도록 하고 나머지는 가능한한 사전투표를 하도록 했다. 사전투표를 하더라도 총회장에서 다른 방향으로 투표하면 결과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성향이 불확실한 조합원이 사전투표에서 우리측을 뽑았다면 굳이 총회장에 나와서 투표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양사 모두 이런 조합원들을 모아 총회 전날 1박2일 일정으로 여행을 보냈다. 그래도 굳이 총회장 출석을 고집하는 조합원이 있으면 전날 집을 찾아가 '합숙'을 하면서 막았다. "

▷사전투표나 총회장 투표에서 이쪽 건설사를 찍었다는 건 어떻게 확인하나.

"일단 이쪽 편이라고 하면 믿는다. 볼펜 형태로 생긴 캠코더를 들려보내 찍어오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이 든 조합원들도 많고 인정상 그게 가능할까 싶다. 그래도 총회장에서는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로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걸 막기 위해 기표장 핸드폰 반입을 금지하더라.들어갈 때 200만원 주고 투표한 걸 확인 받으면 300만원 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관련 내용이 한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

▷조합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즐기면서도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쓰는 돈이 건축비 책정 과정에서 결국 조합원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거다. 수주전이 한창일 때 현장에서는 '맹인이 제 닭 잡아먹고 좋아한다'는 속담이 유행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경쟁을 촉발시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는 조합원도 있다. 이쪽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나면 다른 쪽에 관련 내용을 귀뜸해 더 좋은 향응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B사와 함께 관광가는 버스 안에서 A사 OS요원에 전화해 'B사와 어디로 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할머니도 봤다. "

▷OS요원으로 현장을 뛰며 어떤 느낌이었나.

"건설사들의 재개발 수주전이 과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경비로 지출하면서도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