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과장광고 판결 "그때 그때 달라요"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아파트 1층을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전용 정원을 만들어주겠다고 광고한 뒤 이를 지키지 않은 D건설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건설사는 전용 정원이 있다는 이유로 기피 층인 1층을 2층보다 900만~1200만원 비싼 값에 분양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분양계약서에 전용 정원 설치 약속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건설사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비슷한 사안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아파트 1층 입주민들이 "분양 당시 약속한 전용 정원을 설치해주지 않았다"며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건설사에 분양가의 8%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비인기 층인 1층을 높은 가격에 분양받은 것은 전용 정원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던 만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설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처럼 건설사의 과장 광고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법원별로 판단이 다르거나 하급심의 판단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판례상 광고 내용이 분양계약서상에 들어 있지 않으면 건설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분양 광고,분양 안내책자,모델하우스 등에서 약속하는 내용을 믿고 청약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꼬시기'인가 속인 것인가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것은 1층 전용 정원 광고뿐만이 아니다. 최근 빈발하고 있는 최상층 복층화,전실의 전용공간화,모델하우스와 다른 시공,공원 · 지하철 · 도로 · 개설,조망권 등에 대한 과장 광고 분쟁에서도 법원에 따라 판결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아파트 전실을 전용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광고했다가 지키지 않은 D사에 대해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반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1일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법리적으로 보면 이는 건설사의 과장 광고를 '청약의 유인(꼬시는 행위)'으로 보느냐 아니면 '기망(속이는 행위)'으로 보느냐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법원은 상거래에서 어느 정도의 과장된 광고나 홍보는 허용된다고 본다. 비난받을 정도가 아니면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 또는 주관적인 추측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구체적 사실을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는 기망행위로 봐서 건설사에 손해배상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거래의 중요한 사항''비난받을 정도' 등의 개념들이 주관적이어서 비슷한 사안에 대해서도 법원별로 판단이 달라진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재판부마다 생각이 같지 않아 판단이 다를 수도 있고,얼핏 보면 동일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건의 내용에 차이가 있어 판결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과장 광고 처벌 인색

판례는 과장 광고에 대해 책임을 묻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인색한 편이라고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대법원은 2001년 5월 상가에 대한 과장 광고 소송(사건번호 99다55601)에서 "비록 과장 광고를 했더라도 분양계약서상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이후 하급심 판결들은 분양계약서상에 직접적으로 기재된 내용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약속한 내용들을 계약 내용으로 해석하는 데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2007년 6월 "분양 건물의 외형 재질 등과 같이 광고상의 일정 부분은 비록 분양계약서상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청약(확정적 의사표시)으로 봐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2005다5812)이 나오면서 하급심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광고 내용이 구조 시설 기능 등 계약의 본질적 부분인 경우 △분양을 받은 사람이 광고 내용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았다면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든가 적어도 동일한 가격으로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물리는 사례가 늘고있다.

하지만 웬만한 과장 광고에 대해서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아 아파트 계약자들의 불만은 여전히 높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분양계약서에는 개략적인 내용밖에 들어 있지 않은 데다 계약서에 나오지 않은 약속은 법적으로 보장받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법원의 판단이 보수적이다보니 건설사들이 이런 점을 악용해 과장 광고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우리나라에선 말뚝만 박은 상태에서 아파트가 선(先)분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비자들은 광고를 믿고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며 "법원이 만성화된 건설사들의 과장 광고 행위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