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자금부장이 은행에 보관된 회사의 채무변제 대금 중 900억원을 빼돌리는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동아건설은 신탁계좌를 관리하는 신한은행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반면 신한은행은 동아건설 측의 요구에 따라 적법하게 지급한 것이라고 반발하는 등 서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은행에 보관된 회사의 채무변제 대금 9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동아건설 자금담당 과장 유모씨(37)를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공범인 자금담당 부장 박모씨(48)의 체포영장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 등은 지난 3월4일 위조한 지급청구서로 신한은행에서 240억원을 인출해 빼돌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같은 수법으로 8차례에 걸쳐 채무변제대금 890억여원을 임의로 만든 하나은행 회사 계좌 등으로 이체한 뒤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 등은 채권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빚을 청구한 것처럼 지급청구서 송금리스트 등을 꾸며 은행에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아건설은 박씨와 유씨를 지난 10일 횡령혐의로 고소했다.

동아건설은 2001년 5월 수천억원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한 뒤 1567억원을 회생 변제자금으로 은행에 보관했으며,프라임그룹에 인수된 뒤 지난해 3월 회생절차가 종결돼 현재 정상 경영되고 있다.

동아건설은 회생계획안에 따라 회생채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자 142명에게 변제하기 위해 2007년 11월 신한은행 특정금전 신탁계좌(에스크로계좌)에 1567억원을 예치했다.

동아건설은 특약에 따라 은행 측이 신탁재산 운용내역 및 지급내역을 11개 금융기관 등 채권자와 동아건설에 즉시 통보토록 돼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수익자별로 최대 금액이 확정돼 있고 142명의 채권자 계좌로 직접 지급돼야 한다"며 "동아건설도 142명의 채권자 가운데 하나로 14억원까지만 지급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해당 자금은 동아건설 지시에 따라 적법 절차에 의해 지급됐으며 동아건설 자금담당인 박 부장과 유 과장이 동아건설 명의로 하나은행에 개설한 계좌에 입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특약에 명시된 대로 신탁재산 운용 및 지급내역을 한 차례도 동아건설과 채권자에게 서면으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한은행 측은 "그동안 지급 내역 미제출 문제를 동아건설이나 채권단이 한 차례도 문제 삼지 않아 사실상 묵인해 온 것으로 생각했다"며 "자금 인출 당시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 등이 구비돼 자금 지급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신한은행은 또 "신탁 운용 내역의 통보 여부는 신탁자산 운용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지 이번 사건과 같이 신탁자금의 지급에 대한 정당성 여부와는 관련이 없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금융 사고가 아니라 동아건설 내 횡령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장규호/유창재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