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라는 큰 그릇에 정작 담아줄 음식이 없습니다. "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의 최상철 위원장은 혁신도시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09 지역발전 국제컨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혁신도시와 관련된 질문을 애써 외면하진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배고파하는 지방에 그릇을 나눠주고 음식이 곧 나올 거라고 했습니다. 다들 행복해했죠.하지만 그릇을 채울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릇이 너무 컸던 게죠."

총 4488만㎡에 달하는 넓은 땅(그릇)을 혁신도시로 지정해놓고도 수도권에서 이전해올 공공기관 부지 외에 90%의 땅은 그대로 비어있다는 설명이다.

최 위원장은 그러나 현 정부가 혁신도시를 중단하려는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이전은 예정대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전계획을 승인한 88개 기관에 이어 금명간 18개 공공기관을 추가 심의할 계획"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모든 기관의 이전 승인을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최 위원장은 이제 '추진하느냐,마느냐'가 아닌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때란 점을 강조했다. 특히 혁신도시 토지수용에 들어간 4조원 가운데 8000억원가량이 지방채 발행을 통해 조달됐다는 점을 지목했다. 2012년까지 혁신도시가 지어지지만 향후 자족도시로 성장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보면 그 기간 동안 지자체의 재정악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지자체의 금융비용을 덜어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공공기관 부지 외의 땅은 장기 비축용으로 토지은행에 넣어둔다든지,아니면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토지이용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찬히 일이 되게끔 만들어가자는 고언이었다.

그는 아울러 모든 혁신도시들이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부산 대구 울산 등은 기존 도시의 연장선상이라 큰 문제는 없습니다. 원주와 진천도 수도권 기업과 공장이 자연스레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만,수도권 주변도 아니고 대도시도 아닌 나주 진주 완주 김천 등지 혁신도시가 정말 걱정됩니다. 각 혁신도시의 상황에 맞게끔 '맞춤형 혁신도시 발전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 위원장은 현 정부의 국토개발 방향인 '광역경제권 개발'에 세종 · 혁신도시 프로젝트를 잘 배치해야 될 임무까지 맡고 있다. "이제는 국가 간 경쟁이 아닌 수도권 뉴욕 도쿄 상하이 등 광역경제권들이 국경을 넘어 경쟁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5+2'(수도권 동남권 대구경북권 충청권 호남권+강원권 제주권)로 대변되는 광역경제권 개발을 본격 추진해가면서 세종 · 혁신도시 문제까지 풀려고 하니 정말 어렵습니다. 당장 뾰족한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지혜를 모으는 수밖에 없죠."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