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일 오후 2시께 갑작스런 보도자료 한 건을 돌렸다. 제목은 '금호아시아나,대우건설 계열분리 매각'.다음 달 말까지 대우건설에 대한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180도 뒤집는 결정이었다. "올초부터 새로운 투자자와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를 놓고 긴밀하게 협의했지만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방침 선회 이유를 설명했다. 대우건설 매각 외에는 그룹 유동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미 나와 있던 정답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달 초만 해도 대우건설에 대한 '새로운 투자자'를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산업은행이 계속 대우건설 매각을 종용했지만 '시간만 주면 해결 가능하다'고 버텼다.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더라도 필요한 유동성을 수혈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손을 들어 버렸다.

시장은 "이미 정답은 나와 있었다"는 반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3조5000억원을 빌리는 대신 연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450원을 밑돌면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 계약을 맺었다. 지난 26일 현재 대우건설의 종가는 1만2850원.옵션 행사가격과는 거의 2만원 차이가 난다.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풋백옵션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 39.4%(1억2833만주)를 인수하는 데만 4조원가량의 자금이 필요하다.

금호그룹은 당초 이 자금을 메워넣기 위해 주당 2만원을 조금 웃도는 선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찾으려 했다. 성과도 있었다. 지난달 새 투자자 한 곳과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돈을 대겠다는 쪽에서 사모펀드 또는 전환사채(EB) 등을 통해 대우건설 지분을 사들이겠다고 제안하면서 일이 꼬였다. 이 방안을 받아들이면 금호산업 등 그룹 계열사 전체의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풋백옵션 행사가격과 매각가격 간 차액 수조원이 고스란히 계열사 장부에 적자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몰랐던 갑작스런 조치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이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발표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금호의 발표는 전격적이었다.

산업은행 역시 공식 발표 직전에야 이 같은 결정을 전해 들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측은 "다음 주부터 대우건설 포기 문제를 채권단과 협의할 텐데 이 과정에서 비밀이 완전히 보장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며 "불필요한 루머가 횡행할 것을 우려해 최고경영층에서 매각 결정을 내리자마자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압박도 금호아시아나를 서두르게 만든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 유치방안에 대해 "연 9%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조건은 위험을 연장시키는 방안에 불과하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이런 수익률로 자금을 끌어오게 되면 연간 4500억원가량의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반면 그룹 전체의 영업이익은 2000억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끌다가는…"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 '유동성 위기'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룹 전 계열사의 주가가 큰 힘을 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초 계획대로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신규 자금을 수혈받더라도 유동성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잠복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타격을 입게 된다. '무형의 손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동병상련'이던 두산그룹이 최근 두산DST 등 비주력 계열사를 한꺼번에 털어낸 것 역시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론의 화살이 금호아시아나에 집중될 우려가 높았다는 얘기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