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눈길을 끄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의 외관 설계로 한국에서 이름을 날린 건축가 벤 판 베르켈씨(52).'비정형 건축'의 대명사로 통하는 그가 지난 22일 방한해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도시계획과 건축의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그는 갤러리아 백화점 외에 독일 벤츠뮤지엄,도쿄 루이비통 플래그십스토어 등의 설계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경우 외벽에 4330개 유리디스크를 활용한 독창적 아이디어로 관심을 모았다. 이날 강연회에서 그는 "건축가는 빌딩에 옷을 입히고 미래에 옷을 입히는 패션디자이너"라며 "개성이 취약한 천편일률적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자인에 자신만의 수학적 감성을 불어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독일 뫼비우스하우스가 수학적 감성을 탁월하게 응용한 혁신적 작품이다. 세계 건축 트렌드를 선도하는 UN스튜디오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 건축에 대해 "10년 전보다 개발밀도는 높아졌지만,개발수준이 높아지면서 숨쉴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는 "집이 이렇게 똑같은 모양이면 자기집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며 획일적인 서울지역 주택 개발 문화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또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에는 '컬러'가 없다"며 "컬러는 건축을 표현하는 마지막 수단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건축가들이 건물에 색채를 활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이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산업개발의 수원 '아이파크 시티'에서 그의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연녹색과 주황색을 아파트 외관에 과감히 활용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집의 컨셉트는 '돌아오고 싶은 곳'이다. 판 베르켈씨는 "집에서도 충분히 휴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쉰살이 넘은 나이에도 '땡땡이' 와이셔츠로 멋을 낼 줄 아는 그는 창의성의 원천으로 새로운 '시각'을 꼽았다. 그래서 그는 건축잡지보다는 시사주간지에서,서양 문화보다는 이슬람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한국 문화에서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사찰들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건축에 응용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끝으로 용적률,층고 제한 등 규제가 건축가의 상상력을 제한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학창 시절 바우하우스의 교수로부터는 퍼즐을 맞추듯 건물을 뒤집어 보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