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도 최근들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뛰고 있다. 그 이유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이 물가 상승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물가상승률이 잠재성장률 이하로 유지돼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있다고 진단한다. 환율 하락 등에 힘입어 전반적인 물가 수준은 안정세를 보이겠지만 갈 곳을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자산시장으로 몰려들어 가격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미약한 경기 회복…물가 안정세 유지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첫 번째 이유는 환율 하락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 · 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올라 수입품 가격이 뛰었고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현재 환율은 1달러당 1200원대로 내려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원 · 달러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9%포인트 떨어진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하반기에도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 등으로 환율은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며 "올 연말에는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불안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환율 하락으로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가 최근 들어 일부에서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소비와 투자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물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하반기로 가면서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기는 하겠지만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친다는 것은 총공급능력이 총수요를 초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에는 물가가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또 통화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물가 상승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화 증가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 유동성이 과잉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통화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의 연관성도 과거보다 약화돼 통화 증가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자산시장으로 쏠릴 가능성

문제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가격 상승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진 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높은 상황이 계속되면 돈이 소비와 투자에 쓰이지 않고 자산시장에 유입되면서 가격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과거 지표를 분석해 보면 시중의 유동성이 주택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며 "유동성 증가가 약 5개월 선행하면서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주택가격 상승이 주택담보대출을 증가시키고,그것이 다시 주택가격의 상승폭을 확대시키는 순환구조가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자산가격 하락이 나타났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집값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점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고 그만큼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나찬휘 KB국민은행연구소 부동산팀장은 "미국 영국 중국 등은 주요 도시의 집값이 금융위기 이후 20% 이상 폭락한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간 2.1% 하락에 그쳤다"고 말했다.

따라서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중구 책임연구원은 "금리 인상은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등의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