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 정 협의를 거쳐 발표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법안이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의 반발에 부딪쳐 유보됐다.

한나라당은 급기야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무기명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최종 입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의원 재 · 보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국가 운영의 근간인 세법을 국회의원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발상은 포퓰리즘의 극치다.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지난달 16일부터 소급 적용하겠다고 이미 발표한 상태다. 만약 국회 통과가 불발되고 양도세를 종전대로 중과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세저항이 거세지고 행정소송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도세 중과의 부메랑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만들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1세대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양도차익의 60%'를 양도세로 부과하는 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양도세에는 주민세가 10% 붙기 때문에 실제 양도세율은 66%가 된다. 여기에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는 성격이 짙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마저 다주택자는 배제시켰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넘는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다주택자에게 부과한 것이다.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아 '세금폭탄'을 맞느니 계속 보유하는 쪽을 선택했다.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에 있던 매물이 쑥 들어갔다. 이로 인해 주택시장에서는 집값이 더 올랐다.

다주택자를 범죄인처럼 취급하다 보니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하기보다는 값비싼 주택 한 채를 갖는 것을 더 선호하는 현상마저 생겼다. 인기 지역인 서울 강남 집값이 유달리 더 올랐던 이유다. 양도세 중과 제도는 종합부동산세와 함께 국민의 조세저항을 야기했고 집값을 잡는 데에도 실패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분양 주택이 쌓여갔다. 돈 있는 사람들이 과도한 양도세 부담 때문에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의 주택 수요만으로는 매년 쏟아지는 40만~50만채를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다주택자 순기능 살려라

다주택자는 양도차익을 얻거나 임대소득을 벌어들이기 위해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윤 목적으로 많은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주택보유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주택이 공급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월세 또는 전세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다주택자의 순기능을 깡그리 무시한 채 투기꾼으로만 취급해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매기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정책이다. 조세 원칙에 맞지 않은 세금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의 취지다.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기 위해라서도 다주택자의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정부가 세금을 동원하면서까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주고 있는 마당에 부자들의 여유 자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미분양 주택에 대해 양도세를 5년간 면제 또는 감면하겠다는 조치와 같은 맥락이다.

◆오락가락…세제의 근간이 흔들린다

정당한 세금이든 잘못된 세금이든 관계없이 세금 제도를 고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경제 행위의 일관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는 정책 방향이 맞지만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놓았던 세제를 기준으로 해서 자산을 짜놓은 사람들은 또다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고치겠다고 이미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대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의 반발에 부딪쳐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달 16일부터 양도세 중과 폐지를 소급 적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으나 여당은 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안중에도 없다.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인지 아니면 야당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양도세 중과 폐지를 반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부동산 투기를 다시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3구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데다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부자 감세'논란이 생길까봐 우려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조차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 폐지 정책을 펴나간다면 투기꾼 감세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나는 반대한다"고 말할 정도다.

한나라당이 양도세 중과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더라도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시적 인하 가능성

기획재정부는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미 제출해놓은 세법 개정안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당 · 정 협의까지 끝낸 법안에 대해 뒤늦게 여당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정부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다"며 "처음에 합의했던 사안인 만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마지막까지 국회 설득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양도세 중과 폐지 법안을 한나라당이 무산시키는 것은 집권 여당 입장에서 큰 부담이라는 사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센 만큼 입법안을 집권여당이 거부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약간의 절충안을 모색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 · 정은 지난해 3주택자 이상 양도세 중과 세율을 2년간 한시 폐지하기로 했다가 60%에서 45%로 세율만 낮추는 쪽으로 수정 의결한 바 있다.

당 · 정이 절충안을 모색한다면 2주택자와 마찬가지로 3주택자에 대해서도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를 폐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미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세율을 낮춘 마당에 추가로 수정안을 만드는 것에 대해 야당의 반대가 클 것으로 예상돼 수정안 통과마저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