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입주업체 근무상태서 리모델링중
주요 공사 밤에만 하고 에너지절감 빌딩으로 탈바꿈


대림산업의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보험 본사사옥(이하 교보생명빌딩) 리모델링 현장팀은 ‘올빼미’와 같은 생활에 익숙하다. 낮에도 일을 하지만 주요 공사는 밤에 처리하기 때문이다.

교보생명빌딩 리모델링팀의 올빼미 생활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돼 내년 하반기에나 마무리될 예정이다.

올빼미처럼 밤에 주로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하3층, 지상 23층 연면적 95,072㎡ 에 달하는 초대형 건물인 교보생명빌딩 입주업체가 근무하는 상태에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빌딩의 첫 재실(在室) 리모델링 사례다. 재실 리모델링이라도 비워둬야 하는 층이 있어야 공사를 할 수 있다. 교보빌딩은 먼저 꼭대기 층부터 4개 층을 비운 상태에서 내부 공사가 시작됐다.

비워두는 4개 층 가운데 가장 아래층은 버퍼(buffer)층이라고 한다. 그 아래층 사무실에 전달될 수 있는 소음 진동 분진을 차단하는 층이란 뜻이다. 때문에 버퍼층에서는 최소한의 공사만 이뤄진다.

대림산업은 3개월에 1개 층의 내부공사를 완성하는 사이클로 상층부에서부터 아래쪽으로 공사를 진척시켜 나가고 있다. 위층에 공사가 끝나면 아래층 입주회사들이 올라가는 순환방식이다.

설명이야 쉽지만 교보생명빌딩 같은 초대형 빌딩에 입주업체를 둔 상태에서 리모델링 공사는 대단한 ‘실험’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대림산업은 도면과 설비, 전기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용해 본 경력이 있는 현장직원들을 현장에 파견해 놓고 있다.

교보생명빌딩 리모델링을 현장 지휘하는 윤성도 소장은 “공사가 끝나면 빌딩 리모델링에 신기원을 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콘크리트에서 유리벽으로
눈 밝은 사람이라면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교보생명빌딩의 달라진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띠게 변한 모습은 건물 옆면이 타일PC(일종의 콘크리트벽)에서 유리로 바뀐 것.

단위당 무게 5.5톤에 달하는 타일PC를 걷어내고 가설 샌드위치 패널을 설치한 후 그 위에 유리를 입히는 커튼월로 바꿔 건물 분위기가 벌써부터 시원해졌다.

커튼월로 바뀐 건물 옆면으로 수평방향의 대형 리프트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공사에 쓰이는 벽돌 시멘트 모래 등 자재를 위로 나르는 장비이다.

공사가 한창인 실내로 들어가면 철골조만 남기고 내부 마감재는 모두 뜯어내고 철골내화피복재와 천정 및 벽체 단열재를 뿌린 후 배선과 배관을 교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작업들이다. 벽체를 시스템화해 공간의 가변성을 늘리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올 1월부터 시작된 내부공사는 내년 하반기까지 모든 층에서 이뤄진다. 내년 4월부터는 건물 1층 세종로 방향의 로비가 확장되고 건물 뒤편의 유리로 된 그린하우스가 철거된 후 새로운 공간이 조성된다.

저탄소 녹색빌딩으로 탈바꿈
교보생명빌딩은 1980년 7월 준공됐다. 3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실내 공사과정에서 노출된 배관에는 녹이 덕지덕지 쌓여 있다.

작업자들은 녹을 깨끗하게 닦아내거나 노후된 배관을 교체해 나가고 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교보생명빌딩 동서측 벽면, 다시 말해 전면과 후면에 외부창호도 교체된다. 단순 교체가 아니라 본래 단층유리에서 복층유리로 바꿔 단열성능을 높이게 된다. 내부에서 창호를 교체하고 설치하는 작업은 대림산업만의 고유 공법이란 설명이다.

빌딩이 유리로 뒤덮이면 실내공기질 저하가 우려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각층에는 공기를 빼내고 들이는 층별 급배기 방식이 도입된다.

이와 함께 각층을 4개 영역으로 나눠 냉난방 조절이 가능한 공사가 이루어지면 에너지가 절약된다.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교보생명빌딩이 지어진 30여 년 전에는 사무실에 컴퓨터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컴퓨터 사용환경에 맞게 바닥이 새롭게 깔린다.

이른바 사무자동화용(OA) 플로어(floor)를 설치한다. 맨 바닥에서 일정 간격을 띄어 플로어를 깔고 그 아래에는 컴퓨터 등의 연결 배선이 지나가게 하는 공사다.

전기설비공사에는 조명기구 교체도 포함돼 있다. 에너지를 줄이는 조명기구로 바꾸는 것이다. 옥탑 전기실을 지하전기실로 통합해 관리비를 절감하고 운영비를 줄일 목적으로 원격감시 시스템도 도입된다.

석면지도도 작성했다
교보생명빌딩에는 외국계 회사 뿐 만 아니라 외국대사관도 입주해있다. 빌딩 관리를 맡고 있는 교보리얼코는 리모델링 공사를 앞두고 2007년말 공사 계획을 입주사에 알렸다.

그랬더니 환경 문제에 민감한 외국계 입주사들이 건물 건립 당시 석면 함유 자재를 무분별하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석면 소동’이다.

국제 인증을 받은 전문업체(ETS컨설팅)의 샘플 조사 결과 통제구역인 23층 기계실과 지하 창고 일부에서만 석면이 10% 안팎 함유된 자재가 쓰였고, 사무실로 쓰는 건물 내부는 ‘석면 청정지대’로 판명됐다는 내용을 통보했지만 입주사들의 의구심은 여전했다.

재조사를 요구했으며 자체적으로 국제 공인을 받은 유럽 업체에 의뢰해 건물 내 공기 검사도 실시하기도 했다. 대림산업은 외국계 대사관 및 입주사를 설득하기 위해 교보측의 요청을 받아 국제 공인 업체인 BV(Bureau Veritas)에 석면분석 조사를 맡겼다.

BV사는 교보빌딩 건축자재에 어떤 종류의 석면이 어디에, 얼마나 포함됐는지 총 90개의 시료를 채취, 조사하고 석면지도를 작성했다. 대림산업은 이 지도를 토대로 ▷석면제거 작업구역 설정 ▷작업장 밀폐 ▷제진장치 설치 ▷작업자 보호장비 착용 ▷석면 함유물질 제거 ▷봉쇄제 살포와 청소 등의 방법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는 ‘석면 소동’ 얘기가 쏙 들어갔다.

대림산업 윤성도 소장은 “발주회사와 의사결정구조를 효과적으로 구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재실 리모델링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김호영 기자 en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