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투자은행인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국제 금융위기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깊은 침체의 골을 만들어 놨다. 2006년 하반기 급등한 아파트 값이 2007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시장에서는 이미 '어렵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지난 6개월처럼 사납지는 않았다. 실제로 용인 분당과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은 고점 대비 30~40% 가까이 떨어진 아파트가 수두룩했다. 대표적 재건축 아파트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형의 경우 한때 12억5000만원을 넘었다가 8억원대 급매물까지 나왔다. 서울 강남권에서 일부 급매물이 소화되면서 연초에 '반짝 반등'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암흑 속이다.

시장의 공포는 각종 통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부 공인 통계를 집계하는 국민은행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두 달째 되던 지난해 11월 강남지역 매수세 우위 지수가 '제로(0)'라고 발표했다. 바로 다음 달에는 강북지역까지 '제로'로 떨어졌다. 쉽게 말해서 누구도 집을 사려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분양 아파트는 작년 말 현재 16만5599가구로 미분양 집계를 시작한 1993년 이후 최고치다. 전국 땅값도 10년 만에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조짐이 뚜렷해지자 정부는 규제 완화 대책을 줄줄이 쏟아냈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제외한 수도권 모든 지역을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했다.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소형 주택과 임대주택 의무비율을 완화했고 분양권 전매제한도 2년 이상 줄였다.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해 외환위기 때 실시했던 양도세 감면 조치까지 내놨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집값 하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부동산 경기가 실물경기의 한 부문이기 때문에 정책 변수만으로 시장 분위기가 활성화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규정 부동산114 부장은 "금리가 떨어지고 보유세가 줄어들면서 집주인들이 버틸 수 있는 능력이 다소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주택 수요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춘우 신한은행 부동산센터 팀장은 "정부 차원의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진 뒤에나 제대로 된 반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떨어진 가격만큼 더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