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렉슬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몰려 있는 20여개의 부동산 공인중개소들은 하나같이 한산한 분위기였다.

손님을 맞이한 업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전화상담을 벌이는 곳이 4~5곳 건너 한 곳가량 눈에 띄는 정도였다. 이곳 S공인중개소 대표는 "올해 초 가격이 오르면서 지난주부터 찾아오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최근 거래 동향을 소개했다.

그는 "반면 집주인들은 급매물을 내놓았더라도 막상 매수 대기자가 관심을 보이면 호가를 높인다"며 "34평(112㎡)형을 9억5000만원에 내놓은 집주인이 물건을 한번 보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9억7000만,9억9000만원으로 올리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권 집주인들과 매수 대기자들 간 '힘겨루기'가 드세지고 있다. 집주인들은 이번 경기침체를 견디면 향후 집값 상승랠리가 찾아올 것으로 기대,올해 초 오른 가격을 고수하는 반면 매수 대기자들은 견디지 못하고 내놓을 헐값 매물을 기다리며 관망세를 취하는 추세다.

이 같은 힘겨루기는 매수-매도호가 격차 확대로 이어지면서 거래를 경색시키고 있다.

은마아파트 인근 114베스트로중개소의 김규왕 대표는 "양측의 가격 갭이 2000만~3000만원이면 중간에서 협상을 이끌어 보겠는데 5000만~6000만원으로 벌어져 의견이 절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주인들이 버틸 수 있는 여력을 찾은 것은 올 1~2월 급매물이 상당수 소진된 데다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 미래공인중개소의 신찬영 대표는 "1월에 소형 주택형 위주로 30개가량의 급매물이 팔렸다"며 "현재 20개 정도의 매물이 있고 이 가운데는 융자를 10억원 낀 것도 있는데 집주인들이 급히 팔려고 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반면 수요자들은 '급급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집을 비싸게 팔려는 주인도 막상 수요자 입장에서는 매수호가를 '후려치는' 경우가 눈에 띈다. 도곡동 렉슬 인근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한 50평(165㎡)형의 집주인은 현재 매도호가가 26억원인데 17억원에 또 다른 50평형을 살 수 없는지 물어봤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강남권 집값이 급매물이 나오면 일시 하락했다가 소진되면 다시 반등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울퉁불퉁형 L자형'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동현 대한생명 부동산전문위원은 "싼값에 강남아파트를 매입해 자녀에게 물려줘 세금을 아끼려는 부유층이 많다"며 "경기침체를 못이겨 나오는 급매물이 강남 집값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박진규 기자 van7691@hankyung.com